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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다 가다
-김억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뒷산은 청청(靑靑)
풀 잎사귀 푸르고
앞바단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 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興)을 노래하고
바다엔 흰 돛
옛 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 리 포구(十里浦口) 산 너먼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과 논다.
수로 천 리(水路千里) 먼먼 길
왜 온 줄 아나.
예전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조선시단』 창간호, 1929.11)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수(山水)와 조화된 한국인 특유의 인정미를 7・5조의 가락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들이 대체로 애틋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띠는 데 반해, 이 시는 경쾌한 3음보 리듬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시적 화자의 정감이 어우러져 오히려 밝고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기본 정서는 다분히 한국적으로 자연과의 합일과 과거 속으로의 회귀 욕구가 담담한 독백체 어투로 잘 나타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심성 구조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오다 가다 길에서 / 만난 이’를 못 견디게 그리워한다. ‘자다 깨다 꿈에서’까지 만날 정도로 정든 그 사람이, ‘짙어가는 풀잎’처럼,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리워 시적 화자는 마침내 ‘십리 포구 산 너머’ 그를 찾아 나선다.
시적 화자는 그와의 인연을 ‘그만 잊고 그대로 / 갈’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청청’・‘중중’・‘죄죄’와 같은 음성 상징어와 청백(靑白)의 대비를 통한 선명한 이미지 제시 방법으로써 밝고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죄죄 / 제 흥을 노래하’는 ‘산새’처럼, ‘송이송이 / 바람과 노’는 ‘살구꽃’ 향기처럼, ‘십리 포구 산 너머’를 향하는 시적 화자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아오를 듯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