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召西弩) 여제(女帝)와 온조(溫祚) 대왕(大王)의 사라진 13년의 이야기(4)

  • 등록 2022.11.11 16:16:18
  • 조회수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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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산성(二聖山城)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와~~~~~~~~~. 와~와~.”

2022년 5월 5일. 오후 4시경 호원동 산 35-2. 도봉산 중턱에는 신박신박 신동명 박사의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백제 초기 연질무문토기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이 돌무더기 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함께 산에 오른 ‘진등친목회(김수원(72세), 강대성(61세), 정일삼(60세))’ 회원들도 신박사의 옥타브 높은 돌고래 발성에 같이 흥분하는 모습이었죠.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 조상님들의 은덕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날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의정부 ’회룡분지(回龍盆地)‘를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 추정했던 이유 한 가지. 그건 의정부에 하남(河南)과 똑같이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이름의 산성(山城)이 다른 지역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니까요. 그리고 이 이론을 좀 더 발전시키면 ‘이성산성(二聖山城)’ 있다면 그 아래 마을은 ‘위례성(慰禮城)’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원동 ’회룡분지(回龍盆地)‘가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면 당연히 그 위의 산에는 ‘이성산성(二聖山城)’이 있을 것이고, 산 위에 ‘이성산성(二聖山城)’이 있다면 그 아래의 평지는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일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 자리에서 백제 초기 토기파편이라도 하나 나온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 모든 것이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된다고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이성산성(二聖山城)’과 관련하여 ‘의정부 지명유래’라는 책자 55p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41. ‘이성(二城)재’

이성재는 병문안 북쪽능선에 돌로 성을 쌓은 흔적이 있는 곳을 말한다. 이곳에 봉화대도 있었다고 한다.

 

의정부가 기지촌, 양색시촌, 부대찌개 동네라는 이미지를 벗고 훌륭한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최초이거나 최대인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명을 파헤치며 거기에 걸맞는 내용을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이던 차에 ‘의정부 지명유래’라는 책자 55p에 ‘이성(二城)재’라는 지명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는 이 지명이 그렇게 큰일을 저지를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고 마한의 한 연맹체인 ‘모수국(牟水國)’ 연구에 빠져 있었더랬죠.

개인적으로는 ‘이성(二城)재’? 영화배우 이름이야 뭐야?

그리고 더 헷갈리게 했던 것은 그 뒤에 ‘삼성(三城)재’라는 지명.

그러던 어느 날, ‘이성(二城)재’, ‘호원동 산성’, ‘범골 산성’ ‘회룡분지’ 등의 키워드를 이용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어머나!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는 키워드가 딸려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웜마? ‘이성산성(二城山城)’이 아니라 ‘이성산성(二聖山城)’이네!

순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성산성(二聖山城)’에 대하여 파고 들게 되었습니다.

어머나~. 어머나~. 글쎄 하남시에서 자기네 지역이 백제의 도읍지 ‘하남 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로 ‘이성산성(二聖山城)’을 제시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의정부 ‘이성산성(二聖山城)’과 관련한 소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그 중 안국승 교수님의 의정부 ‘이성산성(二聖山城)’ 설(說)은 와우. 완전 대박~.

이젠 인터넷이 더 똑똑해. 궁금한 건 인터넷에 다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은 지금의 ‘서울동원예비군훈련장’ 자리여서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이도 이 땅의 주인으로 과수원을 경작했던 집이 저의 후배(이동훈. 57세)여서 그의 형(이순길. 65)을 소개 받고 그 안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아~.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끼어 맞출 퍼즐 조각으로 ‘이성산성(二聖山城)’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데 위치가 불분명하고 아는 사람이 없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죠.

여기서 신박사는 생각했죠. ‘진등친목회’에 김수원(72세)형님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왜냐하면 의정부 토박이이면서 산을 좋아하시고, 토기와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한때 수집광이었으며 의정부의 옛 지명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분이니까요.

만약에 된다면 일석이조, 일타삼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의정부지명유래’ 55p에 수록되어 있는 ‘이성(二城)재’의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드리며 ‘어디쯤인지 아시겠냐?’는 질문도 동시에 드렸죠.

그랬더니 즉시에 예상했던 답이 도착했습니다. 잘 알고 있으니 빠른 시간 내에 모여서 탐방을 하자는 역제안이었습니다.

이 카톡을 받는 순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정신은 이미 온조국(溫祚國)으로 가는 타임머신에 올라탄 상태였죠.

그리고 2022년 5월 5일. 우리는 회룡사 올라가는 도봉산 입구에 모였습니다.

신박사만이 아니라 모인 모든 사람은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한 상상’과 ‘기대감’이 버무려진 얼굴들.

우리 회원들은 오늘 여기서 연질무문토기 파편이라도 발견하면 이곳이 ‘이성산성(二聖山城)’이고 산 아래는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며 ‘토기파편의 발견’을 고대하며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죠. 의정부 회룡분지에 온조국(溫祚國)이 존재한 시간대가 2020년 전 일이니, 전문가들이 달라붙어도 찾지 못 할 토기파편을 찾아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인 거죠. 그냘 우리들만의 희망사항.

입구에서 200m 정도 올라가다가 왼쪽에 ‘보루길’ 표지가 나오자 수원형님은 일행을 그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주며 앞장을 서셨습니다.

입구에서부터 계단이 시작되어 30분 정도가 지났는데도 계단은 끝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사는 급했고 능선은 좁았습니다. 적이 침범했을 때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라고 장교로 퇴직한 강대성 회원이 온조국 군사들의 마음을 읽어 전해줍니다.

그럴 즈음 의정부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망루가 나오더군요. 잠시 쉬라는 이야기겠죠. 회원들은 망루에 준비된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망루에서 내려다본 의정부는 숨이 턱 하고 막힐 지경이었죠.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이 틈새 없이 세워져 있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깝깝한 의정부. 큰 건물이 들어서고 뿌셨다 세웠다 하는 것이 발전이요, 돈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정치위정자들과 먹고사는 문제, 산업화의 그늘이 문화와 역사를 잃어버린 의정부로 전락시켰죠.

땀이 조금 식혀질 쯤 다시 계단을 밟아 오르기 시작하는 진등친목회 회원들. 15분쯤 올라가니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포토존’.

돌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라는 표지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가 났죠. 그곳이 바로 우리가 찾던 ‘이성(二城)재’였기 때문입니다. ‘이성(二城)재’라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야 할 곳에 ‘포토존’이라니?

‘포토존’의 배경이 된 돌담은 보루성이었습니다. 돌이 무너져 내려 노래 가사 황성옛터의 기분을 자아내는 하단부. 상층부는 현재 군인들이 사용하는지 타이어와 돌을 섞어 축조해 놓아 눈으로 보기에는 정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옛 보루성의 상태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김수원 형님이 저를 부릅니다. “우리 제주님이 고시래를 해야 온조대왕님이 은덕을 베푸실 것이니 대표로 음복을 하시죠.”라며 저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따라주는 술을 받아 절을 하고 고시래를 한 후 음복을 하였습니다.

형님이 준비해온 막걸리와 삶은 계란을 먹으며 ‘토기 파편의 발견’에 대한 희망사항을 늘어놓습니다. 마침내 토기 파편을 오늘 찾는다 못 찾는다 가지고 내기까지 벌어졌더랬죠.

수원형님이 조금 더 내려가 보자며 안내한 뒷길을 내려가면서 오늘 탐방한 증거 사진을 찍다보니, 이곳이 ‘의정부지명유래’에 실린 사진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배경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 무너진 범위가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보루성을 이렇게 넓게 조성하나? 하는데 수원형님이 잠깐만 “여기는 보루성이 아닌데? 작은 성곽이야. 산성이라고 봐야해.”라시며 산등성이로 다시 올라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렇지. 매의 눈은 피할 수가 없어.”

“신박사님. 언릉 이리로 와보셔. 여기를 파보셔.”

배나온 무거운 몸을 쏜살같이 움직여 수원형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장소에 도달하는 신박사. 수원형님은 이미 한 손에는 작은 토기편을 들고 계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또 다시 소리치십니다.

“이곳에 이 파편을 꺼내보셔. 매의 눈에 걸렸어. 내가 있을 거라 짐작한 곳에 바로 있었네. 아직 뽑지 말고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뽑아요. 그래야 증거가 되니까.”

“아까 온조대왕님께 고시래를 정성껏 하더니 이런 보물을 보내주셨네. 우리 신박사님 온조대왕님께 감사의 절을 백번은 해야겠는데.”

본인이 뽑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저에게 일부러 기회를 주려는 수원형님의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으며 땅속에서 뽑혀 나오는 토기 파편.

“와~. 너무 커. 엄청 큰 토기 파편이야.”

“와~~~~~~~~~. 와~와~.”

긴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감동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마침내 신동명 박사의 손에 끌려 나온 토기 편은 유약이 발라지지 않은 연질토기이면서 그 두께가 일정하지 않았고 무늬는 없는데 손가락으로 두드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물레가 없는 시기에 직접 손으로 만든 토기라는 것을 말해주는 빼박 증거물이 우리 회원들 손아귀에 들어오고야 만 것입니다.

하늘님. 조상님. 이게 무슨 복입니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회원들은 모두 감동이 멈추지 않는 얼굴을 하며 한마디씩 계속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대박이다. 대박.”

“어떻게 2200년 전의 토기파편이 그 곳에서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살아있었던 거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이 사건이 현실인 건가?”

“이 토기 파편 찾으려고 발굴 팀들이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자 하는데, 아마추어들이 올라가서 바로 그날 토기파편을 찾아냈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의정부보물여지도 탐사단.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우리가 찾은 게 아니라 온조대왕님이 보내주신 거네. 이건.”

“이젠 ‘이성산성(二聖山城)’ 복원만 남았네.”

“의정부가 하북위례성이 맞긴 맞구만...”

 

온조국(溫祚國)의 토기파편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기대가, 그 말도 안 되는 희망사항이 2022년 5월5일 무너져 내린 의정부 이성산성(二聖山城) 터에서 일어나고야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벤트가 아니다. 온조대왕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 놓은 이벤트이고 우연을 빙자하여 필연적으로 찾아오도록 미리미리 준비해 놓은 이벤트들인 것이다.”

당일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일갈을 지어준 김수원형님의 멘트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문상 기자 jusink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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