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 줄어든, 우리영토의 비밀

  • 등록 2022.03.11 19: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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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사관 vs 배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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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도사관(총독부사관, 유일정통사관)?

국경개념이 희박하며, 말을 타고 초지를 찾아 힘껏 영향력을 뻗치던 고대.. 당대 최대 강국이던 구리,백제,신라를 어떻게든 반도안으로 꾸깃꾸깃 넣어 이걸 믿으라 강요한 지 어언 100여년.. 이제 그만 속을 때도 되었다...


2. 고대강국 고리, 백제, 신라 터

황하-회수-양자강 유역 비옥한 넓은 땅은 고대강국 고리, 백제, 신라가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화하족을 왜 한족이라 했냐 하면 양자강 지류인 '한수'를 터잡고 사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산세가 험한 내륙에 자리잡고 살았다. 한수자락 한중과 시안이 이들 화하족 중심터였다.


 

3. 과학사실 입증

① 천문관측소 자리, 고리=바이칼호, 백제=북경, 신라=안후이성(후대엔 첨성대)



한국 최고의 천문학자 박창범, 양홍진.. 1994년 고대 일식관측 장소 밝혀낸 탓에 '총독부사관 학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② 신라 : 회수와 양자강 사이 안후이성 중심에 자리하였으며 한반도에 동경이 있었다. 8세기 당나라에 안후이성을 뺏겼다. 통일 이전 일식관측은 안후이성이었으나 통일 이후 관측은 한반도 첨성대에서 행해진다.

③ 고리(고구리) : 지금도 바이칼호 옆에는 고리족이 살고 있다. 부리야트족(부리=부여)도, 부리(부여)호수도 이어져 현존한다.. '흘승골(=흘본=졸본)'은 고리가 처음 세워진 곳!! 국편위에서 고리 발상지 '흘승골'을 '오녀산성'으로 본 것은 잘못된 비정.. 압록강 언저리로 본다는 거다. 안 찾아봤다는 거다.



 

4. 1차사료, 사서 입증

① 고리가 유·연·제·노를 굴복시켰고, 백제가 오·월을 빼앗아 가졌다. <삼국사기> 1차사료 원서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② 백제 : 백제가 빼앗아가진 오·월에는 지금도 백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지명 '전주'라든가, 장족의 자치구 '백제허'의 백제흔적 등.. 중국25사 및 시안박물관 천년 전 비석(우적도, 화이도)에서 고리, 백제, 신라 지명들을 볼 수 있다. 백제땅이던 산동반도에서 백제 지명인 탄현(침현), 황산(항성), 백마강을 다 찾을 수 있다. 황하를 타고 내려오는 당군과 회수 타고 올라가는 신라군이 덕물도에서 만나 황산벌과 기벌포에서 전쟁을 벌인다. 폭풍 치는 바다를 헤치고 가서 한반도 좁은 곳에서 전쟁하는 게 아니고, 안전하게 황하와 회수, 양자강(지류:한수) 통해 이동하며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③ 푸젠성 신라.. <열하일기>에 나온다. 신라가 강성했을 때 차지했던 곳.. 해안가 아니고 내륙이다. 신라 중심이던 안후이성, '신라 구' 등 중국 남동부에 천년이 넘도록 신라말 흔적, 신라인 자치구가 여럿 남아있다. 일식기록과 맞아떨어진다.


5. 유적, 유물

① 백제의 전주.. 완산, 화산, 태평, 기린봉 등 지명이 똑같다. 어디가 오리지널일까?



② 백제의 금산사.. 김제 금산사 vs 산서성 금산사? 중국의 금산사는 후당 때 다시 세웠다 하니 천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중국 금산사의 당시 스님들 기록이 년도별로 적힌 유물이 나왔다.



③ 백제는 외백제(대륙)와 내백제로 나뉜다. 백제의 고도 '난징'에서 수많은 무녕왕릉 비슷한 무덤들이 계속 나온다. 오나라 꺼라고 중국당국은 말한다.



④ 38년 집권한 수나라가 이런 대 운하를 만들었다? 전쟁시 소끄는 수레에 쌀 싣고 비포장도로를 이동하던 때였다. 지금 중국 중장비로도 단시간에 이런 큰 운하 못 만든다.



⑤ 고리 연개소문이 당태종(이세민) 잡으러 왔는데, 이세민이 우물에 숨어서 간신히 살았다. 그가 숨었다는 몽롱보탑은 중국이 인정하는 유적인데, 산동반도 아래에 있다. 고리 최소 영토가 여기까지라는 얘기다. 반도사관에 찌들어서 최소영토를 한반도 안에 꾸겨넣지 말고 사서기록, 일식기록, 유적 등에 바탕하여 영토를 상.식.적.으로 판단하시라..



⑥ 만리장성 : 벽돌로 쌓은 구간은 조선시대 때 쌓은 거다. 명나라가 여진족 무서워서 쌓은 거다. 진시황제 때는 흙으로 흙성을 쌓던 시기였다. 영어로는 '큰 벽'이다. '만리'란 말 없다.


6. 고려사

대한민국 사학자들, 언제까지 쓰다 소키치가 그려준 '엉터리 고려땅'을 달달 외울래? 전질이 내려오지만, 아직도 국보지정 안 된 채 창고에서 먼지 먹고 있는 <고리사>!!



강화도 고리산에는 백/청/적/황/흑련사, 이렇게 5개의 절 오련지가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강화도에는 그 좁은 데서 왕궁 주춧돌이 발견되지 않는다. 40년을 버티려면 왕성도 있고 신하도 살고 군인들도 살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성곽, 성터는 천년 넘어도 없어질 수가 없다. 고리, 백제, 신라 관련 엄청나게 많은 성 이름이 나온다. 좁은 한반도에서 못 찾아서 엉터리 비정한 성들 천지다. 놀랍게도 중국 산동성에 오련산이 있다. 강화도 비정은 다시 해야!!


 

세종 이도가 <고리사>를 쓰게 했더니 사대사관에 찌든 사대부들이 사대적인 사서를 만든다. 이도 마음에 안 든 건 당연지사.. 그래서 이도 죽은 뒤 편찬된다. 그런 사대에 찌든 <고리사>마저 "우리나라가 제후국이 되지 않는다면 회수, 절강 연안까지 바로 금나라와 인접하게 될 것이다" 황하~양자강 사이에 회수가 있다. 도대체 '고리', 얼마나 컸던 거야?



주원장이 명 세우며 고리 왕에게 편지로 아뢰는 내용인데, "저는 회수 서쪽 살던 평민인데, 양자강 건너 양민이 됐습니다. 오랑캐에겐 나라 세운 사실을 아직 안 알렸죠.. 옛 중국 왕들(제후국 왕)은 고리와 땅을 맞대며 신하, 빈객이 되었습죠. 고리에서 왕(제후국 왕)을 시켜준 거죠.." 읍소하고 내용이다. 명칭은 자신을 '황제', 고리 왕을 '왕(제후국 왕)'으로 했는데, 사대사관 쩌는 사관들 장난.. 호칭과 달리 상국에 대한 아부 쩐다.



이처럼 강도 주원장이 세운 명은 양자강 즈음에서 세워져 고리에 납작 업드렸던 하화족 소국이지만, 이어 힘을 키워 이제껏 하화족들이 넘보지 못했던 베이징까지 손에 넣어 이성계의 조선을 신하나라로 삼는 하극상에 성공했다.

조선의 이유, 이황, 이혈은 '책 수거령'을 내린다. 천문, 지리, 음양 관련 책을 모조리 걷었다. 안 내는 자는 찾아 죽였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영토를 숨기려고...

황주량 <칠대실록>, 책도 사람도 역사에서 사라진다. <고리사>도 7대 91년이 사라진다. 후백제, 후고리, 대진국, 신라가 아옹다옹 싸우던 그때, 후백제 각 지역명이 산동반도와 대륙에서 나타난다. 그 기록들, 고리 건국과정 기록이 사라졌다. 그리고 조선건국후 책들이 사라졌다.

임란, 호란 거치고 일제시대엔 본격적으로 사서들을 태워 없앴다.



이희(고종) 때 대마도도 뺏긴다. 조선시대 이래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영토가 사라져 가고 있다.. 영토 축소는 계속되고 있다.



7. 환-배달-고대조선-고리·백제·신라/대진국-고리를 거쳐 이어져온 유목민족 정체성, 살아있는 역사로서 되찾아야..

고리(고구리) 적통 이어받은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다 기마민족!! 초원에서 말을 끌고 철갑으로 무장한 유목민족!! 전쟁때 수레에 쌀 싣는 대신 말 잡아 육포를 만들어 고기를 먹는다. 도축으로 피를 보며 자란 유목민이다. 수레도 필요없다. 바로 본진까지 말달려 왕을 친다. '배달-고대조선-고리' 역사를 부정한다면 모를까, 인정한다면 말을 몰던 강대한 유목민 연합국 체제였던 우리민족 뿌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한다.

8. 꼰대·적폐 반도사관 vs 제대로 된 사관

성계가 천손주권사상을 스스로 헌납한 뒤, 일제 때 완전히 역사를 잃고 머리 없는 좀비처럼 지금껏 살고 있다. 일제의 관제 사학자 쓰다 소기치, 이마니시 류가 만들어놓은 총독부사관(반도사관)을 신주단지처럼 모든 역사학자가 모시고 살면서 꼰대적폐 사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서, 유적, 과학천문기록이 가리키는 역사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된 역사의식은 갖자는 거다. 역사인식에 눈을 못 뜨니 지자체 차원에서 '있던 역사'도 내어놓고 있다. 우리 인식 속의 '한반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DNA에는 보다 넓은 땅과 기상이 깃들어있다. 과학검증, 사서기록, 유적에 대해 꼰대마인드(반도사관=총독부사관) 버리고, 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민중적 접근이 필요하다.

 

Chris Kim 기자 lod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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