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역사

  • 등록 2022.03.18 1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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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주에서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 하은주

3600년 전 은나라는 우리민족의 나라였다. 2500년전 산동 노나라 사람 공자가 책에 밝혀놓았다. 은나라 은허에서 갑골문이 나왔는데, 역사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걸로 <사기>랑 맞춰보니 딱 맞아떨어지더라..



춘추시대는 주나라 천자를 중심으로 제후국에 봉을 준 봉건제였다. 봉건제는 중국 주나라와 서양 중세기, 일본 에도시대가 온누리에서 봉건제를 시행한 딱 3개이다. 이후 패권이 주도하던 깡패시대인 전국시대가 펼쳐진다. 진시황이 하나로 통일한다. 얼마 못 가 유방, 한우가 싸우다 찌질이 유방이 이겨 한나라를 만든다.

 

유철(한무제)이 감히 조선을 칠 정도로 간댕이가 붓기도 했지만, 패했으며 패장들을 기시형에 처했다. 결국 망조가 들어 후한을 거쳐 북방유목민족(배달민족)에 망하고 찌질한 소국이 난립하는 60년간 삼국지 시대가 열린다.​​​​​​​

 


2. 북방유목민에게 지배된 중국의 역사



중국의 역사를 보면 자기네 역사는 반도 안 된다. 늘 외세가 집어먹었던 역사다. 청나라도 우리민족인 여진족이 지배했던 역사다.

중국은 통합과 분열가 되풀이되어온 역사이고, '한족(화하족)'도 애매한 개념이다. 후한-삼국지 60년 뒤 양견이 통일해, 수와 당으로 이어간다. 양광(수양제) 고리(고구리)를 치겠다고 4백만 대군을 꾸리고, 장안에서 출발하는 데만 4달 걸렸다. 쬐그만 반도 먹겠다고 국력을 모조리 바쳐가며 쳤겠냐? 미치지 않고서야? 바이칼호~대흥안령~백두대간에 이르는 방대하고 풍요로운 땅을 가진 고리와 일대 패권을 다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나? 팩트만 놓고 봐도 동북아 전체를 차지한 고리의 문명이 셌다는 걸 상식으로 알 수 있잖나? 변방 조그만 나라라면 뭐하러 그 대군을 동원하나? 고리가 대등하거나 더 강한 문명권의 나라였던 거다. 총독부사관(반도사관)에 속고 살아온 77년, 이제 진실에 다가설 때도 되었다. 7백년 고리(북부여까지 9백년) 역사에 눈뜨자. 이젠!

이세민(당태종)은 우리나라에서 세종 이도 급으로 최고 성군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연개소문에 쫓겨 도망을 가다가 숨었다는 연못이 바로 몽룡 보탑은 현존하는데, 강소성에 있잖나? 적어도 거기까지는 고리 땅이었다는 방증이다.​​​​​​​


북방강국 고리를 잇는 거란족 요나라, 여진족 금나라에 물려 찌그러져 있던 송은 또다시 북방민족이 접수, 원나라가 된다. 도둑왕 주원장의 명과 여진족 이성계는 합이 잘 맞았다. 찌질한 주원장을 이성계가 사대의 정신으로 모시기로 한 게 우리 역사의 큰 패착!!

3. 청 지도자 애신각라현엽(강희제)

시진핑이 잘 나가는 건 유철(한무제) 덕도, 이세민(당태종) 덕도 아니고 애신각라현엽(강희제) 덕이다. 한족은 썩었지만, 초원에 살던 여진족은 정력이 넘쳤던 거다.



임란 겪은 뒤 30년만에 호란을 겪었는데, 그 주체는 여진, 즉 우리 고구리 사람들 아닌가!! 말갈족, 여진족, 다 고구리 민족이었다. "명 칠 테니, 뒤에서 교란만 하지 말아다오" 라는 사실 별것도 아닌 요구만 들어줬어도 호란은 없었다. 그런데 사대에 빠져 오랑캐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굽히지 않은 이종(인조)의 꼴끼가 부른 참사였다.

만청이 중국을 지배할 때, 누루하치 동생 홍타이지(도르곤)가 북경 자금성 입성날 이왕(소현)을 옆에 데리고 함께 갔다. 그만큼 민족적 동일성을 느꼈던 거다. 이왕이 심양에서 살 때도 홍타이지가 그렇게 잘 해 줬다. 아름다운 관계~~

북학파 말 듣고 청과 손잡고 문물을 교류하고, 온누리문물에 일찍 눈뜬 이왕(소현세자)이 왕이 되었더라면 조선말에 메이지유신급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꼴을 못 보겠다고 아들을 죽인 이종(인조)의 꼴끼!! 노론의 주자절대주의, 모화사상이 만들어낸 헛발짓은 조선말까지는 물론, 강점기 토왜가 해방후 지금까지 기득권을 뺏기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4. 민중의힘

중국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과 조선 최제우의 동학혁명은 모두 나라를 뒤흔들었다. 태평천국운동은 기독교를 들여와 사이비화해서 독재를 펼치며 남경을 점령하고 14년 이어갔다. 위대한 깨달음을 동경대전, 용담유사에 담아낸 최제우가 사형당한 뒤, 인내천정신으로 깨어난 농민들이 외세를 막고 주권을 찾고자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중국 근대를 이끈 손문과 대립한 자가 원세개이고, 원세개 할배가 이홍장이었는데, 이홍장은 태평천국의 난 진압하면서 등장한 인물이다.

5. 안중근

"난 전쟁에 진 장군이지 범죄자가 아니니, 전쟁포로법을 적용하라. 너희 일본은 메이지 제국주의를 만든 세력이 일본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동북아평화시대의 꿈을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다.​​​​​​​


6. 중국근대

1911년 신해혁명 이후부터 중국 근대를 논하게 된다.


독립운동가들이 북간도, 서간도로 갈 때, 신규식은 상해로 간다. 가자마자 손문을 만나 독립자금에 쓰라며 몇만원을 건넨다. 스케일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뜻은 높으나 돈이 없어 쩔쩔매던 혁명가 손문을 만나 큰돈을 보태준 거다. 중국 개화파와 동맹회, 박달회 조직해 엄청난 기반을 만든다. 상해에 프랑스 조계도 만든다. 그 덕에 훗날 상해임정이 세워질 수 있었던 거다.



신규식과 진독수가 이웃에 살며 <신청년>이란 잡지를 만들었다. 찍어내면 백만부가 나갈 정도로 대단했다.


황포군관학교 세우는 데도 돈을 대서 훗날 김원봉 같은 빼어난 독립투사들을 배출하게 된 것도 다 멀리 내다보고 투자했던 신규식 덕.. 신규식은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물신양면 애썼다. 중국근대사의 많은 인물들이 황포군관학교 출신..



일본군 하사관 출신 장개석은 신규식 친구를 통해 손문에게 소개되어 인연을 맺게 된다. 잘 생기고 아부형으로 충직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황포군관학교 교장이 되는데, 이 '교장' 타이틀을 가지고 모든 중국의 인맥을 자기 통제 아래에 둔다. 황포군관학교 나온 사람이 군권을 잡는 짜임새였던 탓이다. 따라서 손문 죽은 뒤, 장개석이 대권을 잡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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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개석 & 송씨家 세자매

손문의 부인인 송경령(宋庆龄, 1892-1981), 장개석 부인이 된 송미령, 그 위에 송애령(남편 공상희, 아들 송자문), 송패밀리가 중국을 다 말아먹었다.

송씨家 찰리송은 엄청난 돈을 손문의 혁명자금으로 쏟아부었다. 그래서 찰리송 세 딸이 장개석 조직으로 다 들어간 거다. 패밀리 비지니스 성공!!

8. 모택동 vs 장개석

미국배후 송씨家의 엄청난 돈과 황포군관학교 출신의 탄탄한 군권 인맥을 가진 장개석군이 호남촌놈 무리에게 깨질 줄 누가 알았겠나?

 

 

촌구석 호남에서 사범대 있다가 북경대 간 독일유학파 양창제가 모택동을 북경대로 불러들인다. 북경대 사서로 취직시킨다. 그때 문과대학장이 진덕수, 도서관 관장이 이대조! 이 둘이 중국공산혁명의 아버지! 코민테른 정통을 받아 공산주의 전파! 모택동은 이들에게 공산주의를 전수받아 고향에 내려가 농민혁명 시작~~​​​​​​​


9. 공산당

1911년 신해혁명 뒤 1921년 상해에서 공산당이 만들어진다. 그때 당원이 60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당(이동휘 중심) 만들어진 것은 1918년으로 공산당 역사가 중국보다 빠르다.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다. 뭐든지 세계 조류를 먼저 받아들인다.

각설하고, 공산당 만들어진 다음, 장개석군이 워낙 조져대니까, 1927년 홍군이라는 군대를 만든다. 이 홍군이 엄청난 활약으로 농민혁명을 주도하면서 1949년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선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한다.

 

 

'창업수성', 즉 이루는 것이 어렵긴 하나, 그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 모택동은 창업의 귀재이나, 수성의 악마였다. 1949년 나라를 이룰 때까지의 인민혁명에서의 모택동은 인민 중심에서 바라보고 행동한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나, 그 이후의 모택동은 정적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게 다 죽인 악마였다. "동무들, 무슨 말이든 다 자유롭게 하라우!" 해놓고 5만이상 싸그리 다 죽여버린 거다. 우리나라에서 이승만이 좌익을 보호해 주겠다며 보도연맹으로 가입시켜놓고 전쟁직후 30만 학살한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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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원은 8천5백만명이다. 철저한 과정을 거쳐 공산당원이 된다. 시골에서 농장반장 같은 거 하다가 추천을 받아 위로 올라가며 중앙위원이 되는데(적우제), 그 수가 370명 정도 된다. 최고 자리에 25명이 있고, 7명의 상무위원이 꼭대기에 있다. 그중에서 총서기를 뽑는 거다. 10년 임기!! 5년마다 당대회를 열리므로, 차기 후보가 여기서 뽑힌다. 5년은 같이 가므로, 한 사람의 통치기간이 온전히 10년이라 보기는 어렵다. 상당히 안정적으로 권력구도가 이어간다. 상위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 보면 인물이 괜찮다. 민중에 복무한다는 자세라는 걸 바탕에 갖추고들 있다.

 

공산당 일당체제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온 동북공정 역사왜곡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일단 현재 대한민국 유일의 정통역사학인 총독부사관(반도사관)부터 싹 쓸어버리는 게급선무다. 일제 관제사관에 의해 기술되어 해방후 77년째 가르치고 있는 현재의 엉터리 역사교과서를 제대로 바꾸는 데 앞장서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Chris Kim 기자 lod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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