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우뚝 선 홍범도장군, 우크라이나 피란민들도 보고 싶어한다

2022.08.19 09: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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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제77주년 기념일인 15일 오후 5시 광주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는 항일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1주년을 맞아 진행된 제막식에는 강기정 광주시장과 홍우표 추진위원장, 신조야 (사)고려인마을 대표를 비롯해 시민과 고려인 후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제막식 부제는 ‘바람이 되어 카자흐스탄에서 월곡으로’였다. ‘광복군 아리랑’ 퍼포먼스와 함께 ‘부죤놉카 군모’를 쓴 홍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흉상(조각가 김희상 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흉상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모신 장군의 흉상을 모형으로 재현한 것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홍범도 장군은 항일 무장투쟁가인 의병장으로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홍범도 장군 흉상이 광주에 처음 세워진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홍범도 장군이 광주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작년 8월 ‘홍범도 장군 특별전’을 연 게 계기가 됐다. 홍 장군 유해 봉환을 기념해 열린 특별전에는 김병학 관장이 카자흐스탄 체류시절 수집한 홍 장군과 관련된 사진 원본과 자료 15점, 사진 사본 10여점이 전시됐다. 사진 중에는 홍 장군이 1929년 러시아 연해주 한까호수 인근에서 가족과 촬영한 기념사진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는 “할아버지 유해를 오직 대한민국으로만 봉환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외에는 다른 어느 나라로 봉환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쓴 홍범도 장군의 손녀 홍예까테리나(1925~?)가 1994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중앙묘역 부장과 홍범도재단에 보낸 청원서도 선보였다.

 

광주에서 고려인 정착을 위해 초기부터 헌신해온 이천영 목사는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들에게 자랑스런 선조”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통해 우리는 홍범도 장군과 광주와의 인연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광주 월곡동에 고려인마을이 형성된 것은 2001년 3월경 신조야씨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8만여 명의 고려인 중에 7천여 명이 이곳 고려인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한때 불법체류자, 낯선 외국인으로 차별과 냉대를 받았던 고려인들은 2008년에 재외동포법이 개정되면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즉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도 포함한다(그 직계비속까지)”와 “정부는 재외동포가 대한민국 안에서 부당한 규제와 대우를 받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개정되어서야 비로소 법적으로 동포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나아가 이번 광복절에 국적을 취득한 독립운동가 후손도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독립 지사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우가이 예고르(8) 군이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박노순(1896~1871) 독립지사의 고손자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당당히 수여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외로 탈출한 고려인 피란민들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진 것과 같다. 현재까지 430여 명이 고려인 마을에 들어왔고, 590여 명이 한국 입국을 신청하여 대기 중에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지불해야 할 항공료이다. 항공료는 국내의 후원금으로 보조되고 있는데, 300~400명 정도가 순차적으로 추가 입국할 예정이라는 것이 이천영 목사의 전언이다. 나머지 200여 명의 신청자들은 항공료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한국 입국은 불가능할 것이다. 일제 침략기에 조국을 찾아 헤맸던 우리 조상들처럼 자신들의 조국이 진정 어디냐고 되물으며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최근 대한적십자사는 우크라이나에 약3만명(실제 등록은 약 1만 3천명 정도)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현재 피란길에 올랐으나 돌아갈 곳을 잃은 고려인들을 돕자는 홍보를 하고 있다.

 

필자가 2017년 10월, 카자흐스탄 방문시에 만났던 중앙아시아 고려인 마다 홍범도 장군은 자신들의 우상이고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한국으로 모셔가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터에 광주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세워짐으로써 고려인과 홍범도 장군과는 영원히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광주에 건립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항일 독립운동을 공유한 대한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의 상징물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영광에 홍범도 장군처럼 고려인들도 참여하고 기여했다는 자긍심의 표현이 아닐까. 그렇다고 우리 국민이 이들 고려인의 자긍심을 폄하하거나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편 정부는 작년 광복절을 기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계셨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바 있다. 작년 8월 15일 광복절에 유해가 서울에 도착하였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하였다. 유해 안장식은 8월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서 거행되었다.

 

 

당시 정부는 봉환 및 안장식을 최고의 예우로 진행하였다. 대통령이 특사단을 파견해서 카자흐스탄 정부와 함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확인하고 봉송 준비를 했다. 특별히 장군의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한국 영공에 진입할 때, 공군전투기 6대가 호위하여 장군의 위업을 드높혔다. 실로 장엄한 귀환이었다. 이어 국가보훈처는 이틀간 국민추모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참고1>

홍범도장군 : 평양 출생인 홍 장군은 1895년 을미의병, 1907년 정미의병에 참여한 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1911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무장독립투쟁을 펼쳤다. 대한북로군 소속으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 같은 해 10월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대승을 거뒀다.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하였으나 현지에서 이름없이 고려극장 경비 일을 보았으며, 1943년 불우하게 숨졌다. 우리 정부는 78년만인 2021년 광복절에 해외 독립운동가 유해봉환 방침에 따라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해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대전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참고2>

월곡동 고려인 마을 : 고려인 마을은 전국에 몇 군데 있다. 안산, 인천, 아산, 김해 등지에 있는데 광주에는 월곡동에 있다. 월곡동 마을에는 7천여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2001년에 한국에 온 신조야씨가 이천영 목사의 도움을 받아 광주에 살면서부터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오늘 같은 마을이 조성되었다. 현재는 사단법인 고려인마을 홈페이지(https://www.koreancoop.com)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협동조합도 있고, 다문화학교, 진료소 등 생활 편의시설이 있고, ‘월곡고려인문화관’이 있다. 세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50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고, 그 중 한국에만 8~9만명이 살고 있다.

 

 

이문상 기자 jusink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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