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환빠 논쟁?
환단고기란 무엇인가. 환웅과 단군 기록.

약 십 년에 한 번씩, 한국 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 동북공정, 환빠 논란을 겪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동북아 역사재단장에게 “환단고기를 아느냐?” 라고 질문을 했다. 이는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왜 전혀 없냐는 반문이기도 했다.
‘환빠’라는 용어는 단지 <환단고기>라는 책을 의미하기보다,
대한민국의 고대사, 상고사 전체를 부정하고 조롱하는 용어로 자리매김 해왔다.
우리의 역사는 곰과 호랑이의 신화로 치부되는 단군과 함께
한반도에서만 수천 년 동안 고정되어 살아왔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1. 중국 역사와 한국 역사의 시작.
중국 역사의 시작은 약 2천년 전, ‘사마천’이 쓴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 훗날 송나라 때 (집해), 당나라 때 (색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해석을 붙여 놓아서, ‘사마천’이 쓴 원래의 책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 되었다.
그래서 기록이 진짜냐 가짜냐 진위 논란이 많은 책이지만,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정통 역사서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중국의 시작은 3명의 황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만물의 신인 ‘태호복희’, ‘여와’ 그리고 농업을 주관하던 ‘염제신농’으로 나뉘며,
그 뒤 5명의 제후가 나타난다.
치우천황과 싸웠던 ‘황제헌원’, 고구려의 시조인 ‘제곡고신’,‘전욱고양’, ‘요’, ‘순’ 이다.
3황5제라 한다. 5제 중, 마지막 2명이 전설 속의 중국 임금인 ‘요(堯)’, ‘순(舜)’이며,
그 뒤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가 차례대로 건국된다.
그 후 춘추전국 시대며, 진시황이 통일한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한(漢)나라가 건국한다.
한국의 역사는 중국의 3황5제 중,
5제의 ‘요’ 임금 시대에 고조선의 단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 단기 즉 BC 2333년을 단군왕검 건국일로 여기고 있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카이로 부근에서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있을 때였다.
주나라와 춘추전국 시대, 한나라로 이어지며 우리의 고조선과 전쟁을 벌인 기록들이 있다.
‘기자’ 고조선 언급과 함께, ‘위만’의 고조선이 처음으로 침략을 받았다고 기록되는 부분이다.
고조선의 건국은 신화로 얼버무리고, 위만조선 때 한나라에게 영토를 뺏긴 것을 강조하며
한국의 역사책은 시작한다.
고조선은 신화인가? 실제인가? 고조선 이전의 국가는 없었는가?

2. 환단고기란?
환웅과 단군의 기록이란 뜻이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이란
총 4권의 책을 모아서,
약 1백년 전 ‘계연수’, ‘이유립’이란 사람이 제목을 붙인 것이다.
<삼성기>, <단군세기>에는 환웅과 단군의 기록,
<북부여기>는 고구려 건국 이전의 역사,
<태백일사>에는 환웅부터 고구려를 거쳐 고려 ‘최영’ 장군까지의 기록이 있다.
이 중 어떤 내용이 문제가 될까?
단군의 고조선은 약 2천년 존속 했고, 47명의 단군 호칭의 왕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요’, ‘순’ 임금과 ,하,은,주나라, 춘추전국 시대, 한나라 시대이다.
그 이전, 중국의 3황 시대에 한국에는 환웅 시대가 있었으며
구리(九黎)국으로 불렸고, 18명의 환웅이라는 호칭의 왕이 있었다고 한다.
14대 환웅이 ‘치우천왕’이라 기록된다. ‘황제헌원’과 전투를 벌렸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 있다. ‘치우천왕’ 마저 중국의 조상이라 주장한다.
치우천왕의 국가는 <사기>에 구리국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구리국이 고구려(고구리), 고려(고리)로 이어지고 Korea, 즉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

<환단고기>에는 구리국, 고조선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환웅과 단군 왕의 계보가 자세하다.
물론 이 <환단고기> 기록의 영토 해석은 각 해석하는 자들마다 서로마다 다르다.
한국에서 증산도, 상생티비, 대한사랑 이라는 종교단체에서 축소하여
만주와 한반도 중심의 해석을 내놓았다. 과연 고조선의 강역이 그리 좁았을까?
<환단고기>의 환웅, 단군의 계보는 조선시대 원본이 존재하는 <규원사화>와 교차검증 된다.
중국의 역사보다 오래된 구체적 기록이 담겨있는 책. <환단고기>,<규원사화>.
이 책들이 정통 역사서로 인정되면 가장 불편해하고 시기, 질투할 나라는 어디겠는가?
중국인가? 일본인가? 아니면 한반도만이 우리 민족 유일의 고향이라고 목숨걸고 주장하는 자들일까? 역사학계와 기관들?
3. 동북아 정통 역사서의 종류
중국은 사마천의 <사기>부터 청나라 역사서 <청사>까지의 25사,
한국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일본은 <일본서기>로 정해진다. 동아시아에서 서로 인정하는 기록서들이다.

그 외 책들 <통전>,<자치통감>,<책부원귀>,
일본의 <고사기>등은 모두 기타서로 분류한다.
이 중 <환단고기>도 포함된다.
그러나 다른 해외 책들은 인용을 잘만 하는데, 우리의 역사서
<부도지>,<환단고기>,<규원사화>, 신채호 선생의 많은 책은 아예 부정당하고 있는 걸까?
왜 그럴까? 한국의 역사 기관은 언제나 조선왕조만 분석해야 할까?
<환단고기>의 내용은 교차 분석할 부분이 많다. 고려까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25사 중 <사기>는 신화 속의 3황5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신화적 내용이라 비하하는 <환단고기>와 동일한 잣대라면 중국 기록도 용납할 수 있을까?
<일본서기> 역시 신화로, 눈과 코에서 인물들이 탄생한다.
<남제서>,<송서>와 일본 왕들의 이름이 <일본서기>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교차되지 않는다. 원본도 없다.
과연 올바른 기록서들이라 주장 할 수 있나? 우리가 인정해 줘야 하나?

4. 환웅과 단군의 시작 기록
중국의 신화 속 3황5제 시절. 약 6천년 전 구리국(배달국)으로 불리는 환웅시대가 건국한다.
약 1천 5백년 동안, 18대 환웅까지 존속한다.
<삼국유사> 기록에는 환웅이 삼위산, 태백산을 거쳐,
신들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이라는 이념으로 다스렸다 한다.
마지막 환웅은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 중 곰(熊)부족을 선택했고, 단군에게 왕을 이양했다.
아사달에서 고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건국했다고 한다.
현재 삼위산은 감숙성 돈황에, 태백산은 병마용과 피라미드 무덤이 잔뜩 있는 시안(西安) 부근에 잔뜩 존재하며, 태행산맥으로 이어지고, 베이징을 지나
한반도 북부까지 태백, 백두라는 이름의 산으로 연결되어 불리고 있다.

아사달이라는 뜻은 조양(朝陽)으로 시안(西安)에서부터 만주까지 넓게 나타나며,
평양(平陽)이란 지명 역시 대륙에 흔한 지명이다. 약 2천년 역사의 고조선 흔적이라 볼 수 있다.
시안(西安)부터 베이징(北京) 근처까지 환웅의 환(桓), 단군의 단(檀)이라는 명칭이 흔하게 사용된다.

이러한 지명들이 한반도에는 많을까?
중국에는 곰, 호랑이 마을도 함께 존재한다.
중국 중부의 초(楚)나라 왕쪽들의 성씨가 곰 웅(熊)씨다.
구리국, 고조선의 환웅과 단군의 역사 중심지는 과연 어디였을까?
산이 70% 이상인 만주와 한반도였을까?
춘추전국 시대 <전국책>에는 산서성의 연(燕)나라의 우측에 고조선이 존재하는데,
그 위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태행산맥을 걸쳐 베이징을 점유하는 지역이다.


5. 동북공정이란
<환단고기> 역시 후대를 걸치며, <사기>와 <일본서기>처럼
필사의 오류, 및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파편적 모든 역사 기록을 검토해, 더 나은 기록이 나올 때까지 기존 한국사 해석에 접목해 우리의 역사 정체성을 세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국은 56개 민족을 한족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는 효과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소수민족의 역사와 언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한족이라는 주류에 편승시켜, 한족임을 스스로 자랑스레 생각하게 한다.
둘째, 한족의 역사를 부풀려, 소수민족들이 당연히 귀속되어야 하며, 한족의 질서에 맞게 조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셋째, 주변국 역시 한족의 아래 있던 국가라 세뇌하고, 이민정책을 지원하고, 끊임없이 타국민들을 세뇌하여 중국을 우러러보는 선전선동을 한다.
현재 신장 위구르, 티벳은 한족의 점유율이 50% 육박할 만큼 이주에 성공했고,
중국이란 나라로 동화시켰다.
역사적으로 위구르(회골), 티벳(토욕, 토번)은 당나라 등을 시시때때로 점령하던 강대국이었다.
자 이제 한국이 남았다.
동북공정이란 역사를 축소시키고, 잊게 만드는 정책으로, 본질은 한국 없애기다.
<환단고기>를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동북공정에 편승하는 것일까? 아니면 깨부수는 것이 될까?

6. 역사에 관심없는 민족에겐 내일은 없다.
중국과 일본, 이스라엘, 그리스 모두 신화를 역사적 진실로 배운다.
<환단고기>는 그 신화들보다 훨씬 구체적인 기록이다. 냉대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환단고기>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보 <삼국사기>, 보물인 <고려사>의 강역 해석만 올바르게 하더라도,
고려 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 무대는
베이징과 상하이, 즉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동남부와 내륙이었다.

컴퓨터, AI로 원문의 각종 기록의 교차 검증과 위성지도로 현장을 분석하는 지금,
국내 역사학계가 해석하는 역사.
즉 한반도와 만주에 산골에서만 1만년의 한국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한반도 강역 역사관, 누구를 위한 해석이었나?
일본과 중국은 한국인이 스스로가 역사를 축소하고 다투는 것을 보고 웃고 있지는 않을까?

글 : 고려 삼국 역사복원 협회 대표이사,
고려사 복원 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