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태종 스님, 엔닌의 당나라에서 불전을 받아오러 다녀왔던 일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배를 타고 중국 양자강 양주(揚州)에서 이동하여 신라 장보고가 있는 등주(登州)를 물어물어
청해의 적산(赤山)까지 가는 경로가 나온다.
신라방, 신라소에 대해 적고 있는데, 모든 역사 기록 중 신라방, 신라소에 대한 현존하는 기록은
이 책이 유일하다.
조선과 명나라가 못 없앴거든. 일본에서 보유하고 있어서..
책에 등장하는 중국 땅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신라 사람들이었다.
당시 대륙동부가 신라 본토니까..


대륙에는 아직도 옛 지역명 금성(金城), 월성(月城), 함산(吐含山), 팔공산(八公山) 등을 그대로 쓰고 있다. 중국 불교 성지인 구화산(青阳 九華山)에 신라 왕자 김교각스님(金喬覺 697~794)을 지장보살로 모시고 있다. 대륙이 신라 본토였음을 모든 것이 증명하고 있다.

1. 838년 6월13일 일본 출발
40대 중반 엔닌 스님은 대판 경도(오사카 교토 大阪 京都)에 있는 절의 스님이다. 6월13일 구주 복강(큐슈 후쿠오카 九州 福岡)에서 여러 대의 배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서 3일간 기다린다. 6월17일 배를 타고 떠나 지하도(志賀嶋)에 닿는데 그곳에 5일 정박한다.
6월23일 백수(白水)에 닿고, 2주만인 7월2일 드디어 대륙 해안(육지)에 닿았다. 양자강 하류 큰 도시인 양주(揚州)가 인근이다. 나중에 돌아갈 때도 2주 걸린다. 양자강 하구에서 해안을 따라 천진 거쳐 북경까지 가는 뱃길은 40일 걸린다. <표해록> <고려도경>에서도 그 코스 소요시간이 40일 정도로 비슷하다.
2. 7월2일 현재의 중국 대륙 도착
7월3일 다른 배에 타고 있었으나, 앞서 바다에서 서로 헤어진 녹사 산대씨익(山代氏益) 등 30여 명이 우리를 맞이해 주어 너무 기뻤다. 연해촌(延海村) 국청사(國淸寺)란 절에서 묵으며 피로를 풀었다.
신라땅(대륙남부)에서 일본어를 통역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신라사람 통역관 김정남이 통역을 맡는다.
7월14일 개원사(開元寺) 신라 스님 원욱(元昱)과 필담..

3. 7월18일 운하를 따라 양주(揚州)로 감
배 끌어주는 사람 중에 당나라 사람도 있더라. 물소가 배를 끌었는데, 예닐곱 사람들이 물소를 몰았다. 이 책에서 당나라 사람 만났다는 기록은 이게 유일하다. 이 뒤로 당나라 사람들 만났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모두 신라사람들만 나온다. 신라 본토가 이곳임을 알면 책 해석에 아무 문제가 없다.
배 끌어주는 사람 중에 당나라 사람도 있더라. 물소가 배를 끌었는데, 예닐곱 사람들이 물소를 몰았다. 이 책에서 당나라 사람 만났다는 기록은 이게 유일하다. 이 뒤로 당나라 사람들 만났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모두 신라사람들만 나온다. 신라 본토가 이곳임을 알면 책 해석에 아무 문제가 없다.
“저, 신라 사람인데요” 해야만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신라에서 “나 외국인이요” 하면 이래저래 어렵겠지..

4. 8월4일 태주(台州)행 허가 요청
환학승 원인(圓仁), 사미 유정(惟正)과 유효(惟曉), 수수 정웅만, 유학승 원재(圓載), 사미 인호(仁好), 반시만(伴始滿) 등은 양주 관료(상공) 이덕유를 통해 신라황제에게 "태주 천태산에 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덕유(이상공)의 뜻은 일본 등 외국사절단 접대담당관료(구당일본국사=대사) 왕우진을 통해 전달되었다.
8월24일 이들은 왕우진(왕대사) 인도에 따라 양주(揚州) 개원사로 거처를 옮겼다.
엔닌 스님은 태주 천태산(台州 天台山)에 가고 싶어한다. 태주(台州)=임해시(臨海)! 문무대왕 친동생인 김인문의 작호가 '임해공(臨海公)'이기도 하다. 이곳에 '천태산(天台山)'이 있는데 천태종이 발현한 곳이다. 스님으로서 천태종 발원지에 가 보고 싶었던 거지.. 통행증 있어야 갈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5. 9월13일 회신칙서가 양주부에 도착
양주절도사는 양주(揚州)·초주(楚州)·여주(廬州)·수주(壽州)·서주(徐州)·화주(和州) 7개의 주註를 관할한다. 양주(揚州)에는 강양현(江陽縣)·천장현(天長縣)·육합현(六合縣)·고우현(高郵縣)·해릉현(海陵縣)·양자현(揚子縣) 등 7개 현이 있다.
'회안(강소성 淮安)'은 회수의 가장 안정적 지역으로 '초주(楚州)'라고도 하며, 이곳을 '안동(安東)'이라고도 한다. '고우(高郵)'도 이곳에 있는데, 훗날 고려말 최영(崔瑩)장군이 싸운 유명한 전투지역! 최영이 싸운 지역명이 고우(高郵), 사주(泗州 안휘성 홍택호), 화주(和州) 등이다. 사학계가 해석을 어떻게 하냐면 "원나라의 요청으로 최영이 그 먼 바다를 건너가서 양자강 유역까지 가서 원나라 군과 함께 싸웠다"는 무리하기 짝이 없는(?) 해석을 한다. 최영은 여기 지리를 어떻게 알고 그렇게 싸웠대?
'노주'는 금성.. 금성 옆에 '화주'.. 양주에서 노주, 화주를 관할한다. 양주에 40개의 절이 있었다고 나온다. 근처에 '육합'이 있다. '육합 전투'가 벌여졌던 곳!
양주부에서 북쪽으로 3천리(1200km)를 가면 당나라 도성인 '장안'! 양주부에서 남쪽으로 1500리(600km)를 내려가면 '태주(台州)'다. 태주는 곧 영남도(대륙의 남부)에 속한다.
6. 838년 9월29일
42대 흥덕왕(김경휘 826~836)
43대 희강왕(김제륭 836~838) 정적 김균정 죽이고 황위 오름
44대 민애왕(김명 838~839) 쿠데타로 김제륭 죽임
45대 신무왕(김우징 839) 김균정子, 장보고덕에 황위 오름
46대 문성왕(김경응 839~857) 김우징子, 장보고에게 암살자 보냄
신라 황실의 흉흉한 소식을 듣는다.
7. 10월5일 배를 타고 수도 장안으로 출발
옌닌 일행이 초주(회안)에 있는데, 태주로 가는 통행증이 나왔다. 타지에서 이별의 슬픔을 겪는다.
장안 천복사(千福寺)의 천태종 스님 혜운(惠雲)과 선종 학승 홍감(弘鑒) 법단(法端) 서실(誓實) 행전(行全) 상밀(常密) 법적(法寂) 법진(法眞) 혜심(惠深) 전고(全古) 종실(從實) 중전(仲詮) 담유(曇幽) 등 13명의 선종 스님이 찾아와 "우리는 천태산으로 가려고 하니 작별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하니 엔닌 일행은 “우리가 천태산에 도착하게 되면 반드시 서로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조심하십시오.”라 화답하였다.
8. 11월2일 '구리 사용과 매매 금지' 칙령
칙령이 내려왔는데 "구리를 쓰지 마라"이다. 신라는 구리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었는데 구리를 사용하지 마라 한 거다. 왜냐면 "구리로 돈 주조를 하는데 사람들이 구리로 밥그릇도 만들고 별 걸 다 만드니, 돈 만들 구리가 모자란다. 그러니 사용하지 마라"라는 령이 내려와서 전국적으로 매매 할 수 없게 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12월18일 신라어 통역관 김정남이 사절단의 귀국선을 주선하기 위해 초주(楚州)로 향해 갔다. 일본사절단의 담당관인 왕우진이 와서 “대사 일행이 12월 3일 수도 장안에 도착했다. 양주 관아에 편지가 전달됐다." 전했다.

9. 839년 3월17일
초주자사(刺史)가 일본 스님 일행을 위한 송별 술자리를 열었다. 뱃길을 잘 아는 신라사람 60명이 왔다. 여러 배에 나눠 탔다. 만나는 사람들이 왕씨, 김씨가 많다. 지금도 이쪽 대륙 동남부에 신라마을이 27개나 있다. 고려마을도 있다. '신라마을' 신라구'라는 이름에 프라이드가 있으니까, 명나라, 청나라,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때까지도 '신라 지명'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다.
3월22일 배가 출발하여, 운하를 통해 회수(淮水) 남쪽 언저리에 도착해 숙박했다. 3일 뒤 3월25일 강소성 연수(漣水縣)에 도착.. 3월29일 해주 관내인 동해현(東海縣) 동해산(東海山) 동쪽 언저리에 도착..
회수(淮水) 위로 가로질러 가면 동해현! 해주! 그 근처가 '연수(漣水縣)', 장보고 친구 정년(鄭年=鄭連)이 사는 곳!
4월2일 "명주를 떠난 배가 신라의 경내에 들어갔다" 하는데, 여기서 '명주(明州)'는 현재 상해 아래쪽 항구도시 영파(고려 동남쪽)! ※한반도는 삼국의 변경이고, 고려의 동계! 고구려-백제-신라의 놀이터!
10. 4월5일 숙성촌(宿城村, 雲台山 줄기인 숙성산 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불법체류 사실 발각되다
신라인 집에 머물렀는데, 그곳에 신라스님들 경원(慶元), 혜일(惠溢), 교혜(敎惠)가 있다. 그곳 촌로(왕량王良)가 “너네 신라 사람 아니지? 너네 지금 보니까 말투가 다른데? 외국인이면 체포해 가지고 끌고 가야 되는데?" 의심을 하니까, 스님들이 체포될까 두려워 가지고 "신라 사람이에요. 초주(=회안)에 살아요" 거짓말로 둘러댄다.
4월8일 숙성촌에서 떠나 동해현 해룡왕묘(문무대왕 무덤)에 들러 머물렀다.
11. 배는 장보고 적산법화원 쪽으로 점점 올라갔다.
'안동(安東) 장씨' 족보에 따르면 절강 소흥부(浙江省 绍兴市) 장백익의 아들이 '장보고(張保皐)'! 절강 소흥부는 신라 일식 기록이 관측되는 안후이성(수도 금성) 우측이다.
산동반도 꼭대기가 등주.. <고려사>에 선녀가 노닌다는 '봉래'가 여기다.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칭다오' 즉 '청도靑島)'가 여기이고, 이곳에 '청해(靑海=靖海=靑島)'의 군사진영, 즉 '청해진(淸海鎭=정해위)'이 있다. 그 유명한 장보고의 청해진이다. 신라황제로부터 허가를 득하여 신라군 1만명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해상 무역을 통제했다. 그 유명한 '적산법화원'이 있는 곳이다.

4월11일 신라인의 배를 타고 장보고 적산법화원이 있는 래주(萊州)로 향했다. 4월17일 등주(登州)에 도착했다. "동쪽에 신라국까지 이틀이면 간다"고 들었다.
4월20일 신라인 뱃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 장보고(張寶高)가 신라 왕자(김균정子 김우징)와 합심하여 난을 일으켜서 신라가 내란에 빠졌다" 이런 얘기를 한다. 김균정 아들(子)인 김우징이 장보고 덕에 황위에 오른 것이다.
장보고의 압도적 군사력으로 황권은 김우징에게~~ 45대 신무대왕(김우징 839)!!
4월26일 신라인 30명이 나귀를 타고 오더라. 곧이어 지방관료(압아押衙)들도 배를 해안에 정박시켜놓고 배에서 내렸다. 옌닌스님이 통역을 통해 “우리, 여기서 머물 수 있나요?” 묻는다.

12. 6월7일 적산(赤山) 도착
장보고(張保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은 장보고의 땅에 세운 절이고, 1년에 500섬 쌀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데, 신라말로 예배를 드린다.
남서쪽 산봉오리들이 벽처럼 이어져 있고, 바다가 멀리 열려 있다 하니, 지금의 산동반도 '적산' 지형 설명과 딱 맞아떨어진다. 실물로 '적산법화원(법화사法花寺)'도 그곳에 있고.. 법화사 안에 엄청나게 큰 장보고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적산법화원 기록은 여기밖에 없다. 완도 아니다. 완도는 지금도 겨우 4만명대 사는 외딴 섬으로 조수차가 심해서 글로벌 항구로 매우 부적절하다. 1200년전에 아라비아 상인, 송나라 상인들까지 북적거리는 글로벌 항구였다면 지금의 부산항 정도나, 그 이상의 거대항구여야 마땅하다. 1200년전 대도시가 지금 대도시고, 1200년전 대항구가 지금의 대항구다. 지형이나 거주환경에 있어서 1천년전이면 딱 지금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신라 통사 압아 장영(張詠)과 임대사(林大使), 왕훈(王訓)이 다스린다.
6월8일 청익법사와 유정, 유효 등이 적산법화원(법화사 절)에 들렀다. 여러 승려 등 30여 명이 있더라.


13. 새 신라황제 알현 사신들이 장보고 적산법화원에 먼저 들름
6월28일 당왕(이앙李昂 문종 827~840)이 새로 즉위한 신라 황제(신무대왕 김우징祐徵)에 문안드리러 30여명의 사신들을 보냈다. 이들은 신라 실세 장보고에게 인사 드리려고 적산법화원 절에 들렀고, 장보고가 보낸 최병마사(崔兵馬使)가 이들을 맞이하였다.

8월13일 청주(靑州 현 산동반도)에 스님들이 많이 와 있고, 발해 배도 청산포(靑山浦, 현 산동반도 성산도成山島)에 있다.
청주(靑州) 관내에 래주, 치주(淄州), 등주, 녹주(淥州) 4주가 있으며 산동도(山東道)에 속한다. 등주에 모평현, 문등현, 봉래현(蓬萊縣), 황현(黃縣) 4현 있음..
14. 7월23일 불교 성지 오대산(五臺山)으로 가기로 함
남쪽 천태산(天台山)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므로, 우선 북쪽 2천리 거리의 오대산(五臺山)으로 가기로 했다. 적산원에 온 지 20년째인 신라 스님 성림화상(聖林和尙)으로부터 오대산의 성스러운 유적에 대해 듣고서 관심이 급 커진 것이다.
적산법화원에서 래주(莱州), 제주(济州), 운주(郓州), 거쳐 오대산(五臺山)으로 간다. 운주(郓州)는 이정기 제나라 수도로 제주에서 남서쪽으로 300리(120km)!
적산법화원에서 6달 이상 묵었는데 스님들이 40명 이상이며, 예배는 다 신라말로 한다. 모든 게 다 신라말로 이루어진다. 완전 신라판! 신라마을들이 그 근처로 아직도 수십개가 존재한다는 것과 맞춰보면 이곳이 어느 나라 땅인지 너무 쉽게 파악된다. 나오는 스님들도 신라스님 상적(常寂), 양현(諒賢), 경원(慶元), 혜일(惠溢), 교혜(敎惠), 법청(法靑) 등 완전 신라판이다.
’구당신라사(勾當新羅使)' 이러니까 마치 '당나라땅'과 관련있는 줄로들 아는데, '당當' 자가 '신라 관료'라는 뜻이다. '당唐'과 관계없다. 한자가 다르잖아? 구당사(勾當使), 구당신라소(勾當新羅所), 구당신라소압아소(勾當新羅押衙所), 구당번객(勾當蕃客) 등 다 신라 관직으로 이를테면 '구당번객(勾當蕃客)'은 외국인 관련업무 맡은 관직을 뜻한다. 엔님 스님 일행 같은 외국인들(일본사람)에 대한 업무처리를 한 곳..
15. 840년 1월27일 '적산 떠난다' 통보
엔닌 일행이 "적산을 떠나 오대산으로 가겠다"고 하니, 신라관리(압아)가 '문등(文登縣)'에 "십여일 기다리면, 주사 처분 이후 자유로이 통행해도 좋다"는 사전 출입허가를 받아준다. '문등(文登縣)'은 산동반도 '등주(登州)'에서 대륙쪽으로 동남쪽 500리(200km 혹은 330리)인데, 발해 서쪽끝이자 당나라 동쪽 국경이라고 나온다.
장보고 청해진 대사에게 그간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의 편지를 남기고 길을 떠난다.

2월20일 일행은 '문등(文登縣)'에 도착한다. 이틀뒤 "1월3일 당왕 이앙(開成왕=당문종)이 죽고, 새로 즉위한 이염(당무종)이 선왕 측근을 무려 4천명이나 죽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당왕 이앙(李昂 문종 827~840)
당왕 이염(李瀍 무종 840~846)
2월25일 문등(文登縣)을 떠나, 이튿날 용천촌(龍泉村) 도착..
16. 3월2일 등주(登州) 도착
등주 개원사에 도착한다. 적산에서 뱃길 따라 400리(160km)..
등주(登州)에 신라관(新羅館), 발해관(渤海館)이 있다. 문등현(登州) 적산에서 청주(靑州)로 가는 길은 모두가 산과 들판인데, 메뚜기 충해로 백성들은 굶주리다 못해 도토리 주워다 끼니를 때우더라. 3월20일에는 귀국하는 발해(渤海) 사신을 만났다.
3월25일 3~4년간 그 일대를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척박한 땅에 머무느라, 우리 일행은 너무 굶주려 밥을 구걸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변방에서 날아서 일본에서 왔는데 어우 너무 좀 먹을 거 좀 주세요" 이런 거다.
구걸이 통해서, 갱미 3말, 보릿가루 3말, 속미 3말을 보시받았다.
17. 등주(登州)에 온 발해 왕자
3월28일 등주(登州) 관료(유후관) 왕이무(王李武)가 신라원(절)에 찾아왔기에 만나보았다. “며칠 전에 발해 왕자가 여기 도착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기다렸다가 떠났다.”고 하였다. 이 절(신라원)에서 재를 지낸다며 두루 초청하자, 50명의 많은 스님들이 왔다.
18. 4월3일 청주(靑州)를 떠남
서북쪽으로 65리(26km)쯤 걸어서 왕씨 집에 머물렀다. 서쪽 멀리 장백산(長白山)이 보였다.
이튿날 서쪽으로 21리(8.4km)쯤 걸어서 치주(淄州)에 도착했다. 밥먹고 서북쪽 30리(12km) 더 걸어가서 곽씨 집에서 숙박했다.
19. 4월11일 제하(齊河)에서 나루를 건넜다(제주齊州)
황하 나루터(약가구藥家口)에 도착했다. 황하남쪽=제주(齊州), 북쪽=덕주(德州)..
4월13일 당주성(唐州城) 안의 개원사에 머물렀다. 청하를 지났다. 4월19일 조주(趙州) 개원사, 이튿날 진주(鎭州)에 도착했다. 4월22일 진주(鎭州) 땅의 행당현(行唐縣)에 도착해 성 안에 들어가 묵었다. 석가장(옛 석문)으로 신당전쟁 전투지.. 670~676년 7년 신당전쟁을 통해 깝죽대는 내륙용병국 당唐을 짓밟아 버리고, 대륙 전체를 통합한 삼한일통을 완성했고, 이후 왕건 고리 때 고구리 백제 신라의 모든 땅(황하이북 발해땅과 이남 신라땅)을 통합하여 글로벌 대제국(천자국)의 위상을 온누리에 떨쳤다.
20. 4월23일 입산, 4월29일 오대산 남대 도착
4월28일 골짜기에 들어서서 오대산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이튿날 남대에 도착했다. 2월19일 적산원을 떠나 여기까지 44일간 무려 2300리(920km)나 걸었다.
안문관 있는 곳이다. 다섯개 봉우리가 있다 해서 오대산.. 충선왕이 원나라 태후를 수행한 게 오대산이다.
5월1일 오대산 순례길을 시작한다. 스님들이 많다. 제주(濟州) 영암사(靈巖寺, 長淸縣방산) 주최 후원으로 죽림사에서 750명의 스님들에게 재를 베풀었다.
천태종 강사(천태좌주) 지원 스님(志遠和尙) 강의후 찾아가서, “저희도 일본 천태종입니다” 하니 환영해 주더라. 지원 스님은 "일본국 최징삼장(㝡澄三藏)이 천태산에 들어와 불법을 구했었지. 태주 지자체장(태주자사 陸公)이 불경 수백 권을 베껴 삼장(최징삼장)에게 주니, 그걸 받고서 기뻐하며 본국(일본)으로 돌아갔었어" 하며 일본 스님들 왔던 썰을 풀었다. 엔닌 일행 중 남악 스님(南岳大師)이 일본에서 태어나 불법을 펼친 걸 자랑스레 얘기하자, 오대산의 지원 스님도 무척 기뻐했다.
성령의 땅 이곳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성령을 숭상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 나귀를 만나더라도 이것이 혹시 문수보살의 화신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일어난다. 보이는 모든 것이 문수보살의 화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21. 5월20일 오대(五臺) 순례길 시작
5월20일 중대 순례길을 시작하여 서대를 지나고, 5월21일 북대를 순례했다. 5월22일 북대를 떠나 동대를 순례했다.
5월23일 순례길을 마치고 내려와 문수보살이 들른 굴 인근의 문수당, 보현당을 둘러보고 해가 저문 뒤, 화엄사로 돌아왔다. 이 날부터 아직 일본에 없는 천태 문서를 베끼기 시작했다.
6월6일 칙사가 와서 오대산 12개 큰 절을 돌며 면, 포, 향, 차 등을 공양(보시)했다.
(기사 계속 이어집니다)
글 : 고려, 삼국 역사복원 협회, 고려사 복원 학회. 이사 Chris Kim
공저 : <책보고 99개 한국사 강의 요약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