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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발해가 건국한 영주(營州)는 어딘가?

태원지방 연(燕)=기주冀州·유주幽州·영주營州(朝陽)

 

발해가 건국한 곳 영주(營州)는 어딘가? 

 

대학 교수, 강사, 정부 역사 기관들에서는 어딘지 찾아볼 생각 자체가 없고,

그나마 일반인 재야사학, 민족사학자들은 찾아보려고 애쓰지만,

수십년간 엉뚱한 이곳저곳 들쑤시는 중인 우리 역사 주요 지명, 영주(營州)!

 



중국 북조와 고구리와 고리의 강역으로 중요한 지명이다.
누구나 기록과 위성지도, 고지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당서> 발해말갈전에 대한 국사편찬위 역주는 번역을 제대로 안 해 놓아서,

중간중간 잡서 인용과 잡소리 역주 빼고 제대로 번역, 요약해서 소개한다.

대륙 산서성 태원(太原)

연(燕)=기주冀州· 유주幽州· 영주營州(朝陽)

 

1. 연(燕)나라는 유주(幽州),

제나라는 영주(營州)로 부름

요서, 북평의 2군 포함한 지역.

북위때 영주(營州)는 용성으로 불러 다스린다.

북위의 영주(營州) 치소는 창려, 건덕, 요동, 낙랑, 기양, 영구..

하·상시대 기주(冀州)

주나라 유주(幽州)

춘추전국시대 연(燕)

진시황과 한나라때 요서

연燕나라때 유주(幽州),

제齊나라때 영주(營州)

북위의 땅이고, 수나라의 땅

당나라때 모해의 땅(唐初爲韓唐莫奚所據),

안록산의 난 때 쫄보왕 이융기가 사천성으로 도망가며 잃은 땅(天寶後府廢).

 



2. 하·상나라 시대 기주(冀州=冀州镇)

고구리와 고리의 땅이라고 기록된 곳이 기주(冀州)!

그 남쪽에 현토가 있다.

<대청광여도> 보면 산서성에 딱 이름이 적혀 있다.

※현 하북성의 기주(冀州)는 이후 지명이동된 곳이다.

 

 


3. '유주(幽州)자사 진'의 유주(幽州)=태원!

연나라 중심지 용성(龙城街) ※ 북경 아님 주의!


4. 발해 대조영(+을사비우)의 영주(營州)

당나라의 동북방향(=조양朝陽)! 
​즉, 발해는 태원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이 조양(朝阳街)!

5. <삼국사기> 기록

"고구리가 연燕 용성龍城을 습격하여 산서성 점령"

 

 

385년(고국양2) 6월 고국양태왕이 4만 고구리군을 동원하여  태행산맥 산맥 너머 태원지역(연燕) 용성(龍城)을 습격했다.

태행산맥 관목 요동(현 좌권)과 현도(현 산서성)를 점령하고,

남녀 10,000명을 포로로 잡아 수도인 안평의 동황성(安平县 东黄城镇)으로 돌아왔다
※ 343~427년 고구리 수도 동황성(安平 东黄城)

 

 

6. 결론

태원산맥 너머 넓고 살기 좋은 땅 태원!

이 지역은 평요고성과 함께 대륙의 양대 고성으로 불리는 태안고성(봉황성)이 있는 인구 5백만의 대도시이다. 이 곳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늘 '연燕나라'라 불리는 내륙소국이 자리잡고 살던 땅이다.

고구리 시대 북위, 연나라의 땅이며,

수나라가 집적거린 곳이고, 당나라가 잠시 차지했다가, 안록산의 난 때 잃었고, 이후 발해가 되찾은 우리 땅, 고리적에는 다시 고리의 땅!​

 

 

 

 

원문 : 구당서 발해말갈전. 국사편찬위 부분 해석  『舊唐書』 渤海靺鞨傳 

​營州, 建國傳說時代부터 近世까지 中國에서 불리어져 내려왔던 地名이다.

(가) 建國傳說期의 州名: 營州에 대하여 『爾雅』 「釋地」에는 ‘ …… 燕曰幽州 齊曰營州 …… ’라고 하여 이른바 黃帝 또는 顓頊의 九州 속에 넣고, 『疏』에는 「博物志」에 ‘ …… 營與靑同 海東有靑丘 齊有營丘 豈是名乎’라고 하여 지금의 山東半島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顧祖禹의 『讀史方輿紀要』歷代州域形勢 唐虞三代條에는 ‘ …… 舜攝帝位命禹平水土 以冀·靑地廣 ·…… 又東北醫無閭地 爲幽州 又分靑州東北遼東之地 爲營州書曰 肇十有二州’라고 하여 中國建國傳說의 帝王 舜이 靑州의 東北 遼東의 地를 나누어 營州로 하여 全國이 12州가 되었다고 한다.

(나) 後趙의 地名: 羯族政權의 石虎가 지금의 北部中國 灤河·永平 附近에 설치한 州名이며(『晋書』 「石季龍載記」), 『資治通鑑』 「晋紀」의 胡三省注에는 遼西·北平의 2郡을 領하였다고 한다.

(다) 北魏시대의 營州: 『魏書』 「地形志」의 ‘營州治和龍城 太延二年爲鎭 眞君五年(A.D. 444) 改置 永安未陷 天平初(A.D. 534)復’이라는 記事에 따르면 北魏에서 置한 營州의 治所는 今日의 熱河省 朝陽인 和龍城이었다. 昌黎·建德·遼東·樂良·冀湯·冀陽·營丘의 7郡을 領하였다.

한편 『讀史方輿紀要』直隷 萬全都指揮使司 附見 大寧城條에
古營州地 夏商時冀州地 周爲幽州地 春秋時 亦爲山戎地 戰國時屬燕 秦屬遼西郡兩漢因之 …… 宋元嘉十三年(436) 後魏取其地 亦置昌黎 建德等郡 兼置營州置焉 …… 隋開皇三年 取其地 廢郡 仍曰營州 唐初爲韓唐莫奚所據 貞觀十九年 征高[句]麗 駐驛于此 諸奚臣附 因復置營州 幷置饒樂都護府 天寶後府廢 ……
라고 한 것으로 보면 唐初부터 營州는 唐帝國이 東北控制의 據點으로 삼아 왔었다.

大祚榮과 靺鞨의 乞四比羽가 무리를 이끌고 東走하였다는 營州는 唐帝國의 東北地方控制의 據點이었던 現在의 朝陽 附近이다.

 

 

글 : 고려, 삼국 역사복원 협회,  고려사 복원 학회. 이사  Chris Kim

공저 : <책보고 99개 한국사 강의 요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