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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최초) 발해의 5개 수도 위치. 감춰놨던 고구려 후손

(최초) 발해의 5개 수도 위치. 감춰놨던 고구려 후손

 

발해(渤海國)는 당나라 기록에 진국(震國)으로도 기록이 되어있으며,

중국이 고구려와 더불어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대한민국의 역사다. 

<삼국사기>보다는 중국의 당나라 역사서, <구당서>, <신당서>,<송사> 에 자세하게 기록이 된다. 

 

(이미 2016년부터 중국은 거란, 발해, 고구려, 백제, 부여를 그들의 역사라 주장한다.)

 

698년부터 926년 까지 약 250여 년을 존속한 국가로, 

중국의 왕조들이 300년을 못 넘기고 매번 멸망한 것과 비교하면

발해 역시 주변에 영향력이 컸던 국가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 후 뒤를 이었던 발해,

과연 그 중심지는 어디며, 어떤 기록으로 우리에게 기억될까? 

 

옛 문헌 기록과 그 지명들을 한자를 지도로 찾아보면,

당연히 역사의 중심지는 쉽게 밝혀진다.  그간 이 쉬운 방법을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한국역사학계에서는 도대체 왜 그간 중국 대륙에서는

우리 역사 지역을 검색 하지 않았을까? 

 

왜 중국에서 주는 자료를 일방적으로 검토없이, 무지성으로 받아서 인용했을까? 

이제 중국의 입장에서 입맛에 맞게 고쳐서 알려준

우리 역사 영토를 받아서 암기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 

누구나 대륙 중원에 존재하던 고구려의 뒤를 이었던

발해의 영토를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과 AI 의 발달로

집단 지성 시민의 힘이 진실을 밝히는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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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진국 발해 건국 위치, 상황 

668년 고구려가 멸망 후 

신라는 고구려의 안승을 보덕(報德)에 왕으로 앉힌다. 

신라와 당나라가  7년간의 패권전쟁을 벌일 때 (770~776년),

남은 고구려인들은 신라를 도와주어, 당나라를 물리친다.

 

후에 당나라가 고구려의 중심부 신성(新城)에 두었던 안동도호부를 

서쪽인 산서성 평주(平州)로 이동시키는 이유도, 

고구려의 후손들의 세력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발해의 중심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이 있다.

<구당서, 신당서> 중국의 기록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은  (동이 열전)이란 곳에 

기록해 두었는데,  동쪽이라고 분류를 해놓은 반면,

발해는 (북적 열전) 즉 당나라 장안의 북쪽에 있는 국가로 분류를 해서 기록해 두었다. 

당나라의 북쪽에 발해가 존재해야 한다.

 

(산서성 태원에 존재하는 고려=고구려 산山 지도)

 

옛 고구려의 영토였던 산서성 태원(太原) 즉 영주(營州)에서

대조영이 일어나, 천문령 전투(현재 태원에 천문관이 존재한다) 승리로 

당나라의 잔여 세력을 몰아내고, 발해를 건국하니,  

진국(震國)이라고 불렀다.

이는 동방을 나타내는 단어로, 발해는 동쪽의 융성한 나라,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해동(海東)이란 현재 중국 중부의 청해(淸海) 호수의 동쪽이란 뜻이다. 

 

(청해, 칭하이 淸海. 호수인데 바다라고 불린다. 이 동쪽을 해동 海東으로 부른다) 

 

 

2. 발해와 신라의 위치 

<신당서> 기록처럼 발해는 남쪽 신라와 국경을 니하로 정했다 

니하는 진흙 황하로, 황하의 지류를 뜻하며, 지금도 그리 불리고 있다.  

 

당나라 당고종 이후,  측천무후 시기, 

그들은 남아 있는 유민을 부추켜서 백제를 다시 재건하려 시도하지만, 

' 663년 이미 패망한 백제의 땅은 발해와 신라가 사이 좋게 나누어 가졌다.' 고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에 기록된다. 

 

이는 현재 한반도의 역사해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발해가 경기도, 충청도 백제의 땅을 점유한 지도를 본적이 있는가? 

 

 

 

 

3. 발해의 5개의 수도, 전투지역의 위치 

발해의 강력했던 2대 무왕은 산동반도의 등주(登州)를 공격했다. 

당나라에서는 신라와의 교역지를 잃을까 두려워 신라군의 출동을 요청했다. <삼국사기> 

이성계의 조선은 1경, 즉 수도가 1개였지만,

신라는 9주 5소경, 즉 5개였고, 

발해 역시 5경이었다. 

왕건의 고려 역시 3경 (서경,개경,남경) 체재였다. 

 

발해의 5경은 모두 지역이 기록상의 한자로 검색이 된다. 

상경용천부, 서경압록부, 중경현덕부, 남경남해부, 

그리고 일본으로는 가는 길이라는 동경 용원부다. 

 

 

 

(한자 그대로 검색을 해 보자. 이 외에도 수많은 발해의 군사진영, 마을들이 해당 위치에서 검색된다.)

 

 

4. 발해의 수도 이동, 안록산, 이정기의 제나라와 관계

발해의 3대 문왕 시기, 

산서성 평주를 다스리던 돌궐사람 안록산이 당나라에 반역하며 난을 일으키고,

국가를 건설한다. 북방 오랑캐의 연나라, 호연(胡燕)국이다. 

산서성 평주에서 밀려나, 산동반도 치청래해에서 힘을 키우던 고구려 유민 이정기는

안사의 난을 평정하고,  산동반도와 산서성을 중심으로 거대한 제나라를 건설했다. 

 

 

이에 3대 발해 문왕은 이정기의 제나라가 당나라를 공격할시,

발해 기마병으로 지원을 해 주었다고 <태백일사>에 기록된다. 

 

(평로, 치청을 다스렸던 고구려인 이정기는 요양의 지배자, 아들은 농서의 지배자였다. <구상서, 신당서 기록>

 

발해 문왕은 이러한 정세 위험에 

중경현덕부에서 상경용천부로 이동했다가,  

후에 안전한 동경용원부로 이동한다.  또한 다시 상경용천부로 귀경한다. 

발해 동경용원부는 일본도(道) 즉,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고 불렸다. 

 

안록산과 그 후 이정기의 제나라의 세력 확장에 따른 안전한 곳으로의 이동이다. 

 

5. 발해의 남경 기록

 

(중화인민 공화국 초기 지도. 발해와 발해국의 영토가 표기 되어있다. 저 위치는 발해 남경 남해부의 위치다)

 

발해라는 국가는 발해만이라는 바다 근처에서 건국해야 상식에 부합하다. 

산동반도 남해(南海)라는 지역은 현재 하북성으로

중국 전체에서 보면 북쪽이지만, 고구려와 발해에서 보면 남쪽인 곳이다. 

현재도 남해라고 불리고 있으며, 군사진영 동영(東營)시를 

발해의 남경 남해부로 해석함이 옳다.  이 곳은 패망한 옛 백제의 땅이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지도에는 발해만 뿐 아니라, 그 땅을 발해로 표기하고 있다. 

이렇듯 발해국(渤海國)의 남쪽 위치는 쉽게 확인된다. 

 

6. 신라 말기, 장보고의 청해진과 발해  

 

신라 말기 흥덕왕.  청해에서 신라인이 매번 납치되니,

군사 1만명으로 지키게 해 달라고 장보고가 흥덕왕께 청원을 한다. <삼국사기, 당서> 

이 기록에 당나라가 신라인을 납치했다는 말은 없다. 누가 신라인을 납치했을까? 

산동반도 북쪽에 발해국이 존재하던 시기다. 

발해는 니하(泥河)를 국경으로 신라 등주와 가까웠다. 

 

신라 장보고 청해진은 청해의 군사진영이라는 뜻이다. 반드시 청해에 존재해야 한다.

산동반도는 청해(靑海)라고 불린다. 청도(靑島, 칭다오) 가 존재한다. 

이 곳에 현재 장보고의 적산법화원이 존재한다. 

일본 스님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기록된 신라 장보고 소유의 땅과 절이다. 

발해의 왕자가 산동반도 등주(登州)를 이용하여 발해국으로 귀국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의 전라남도 완도가 과연 청해진(淸海鎭)인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형 항구인가? 

기록과 상식에 부합한가? 

 

 

7. 발해의 멸망, 고려에 흡수 기록

발해는 야율아보기라는 장군의 쿠테타로 멸망했다.  그는 거란, 즉 요나라를 건국한다. 

이에 발해의 유민들은  고구려의 '여',  발해진국의 '진' 을 따와 

'여진(女眞' 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고려 시대부터 등장한 이 부족은 서여진, 동여진으로 나눠 불린다. 

 

현재 베이징(北京)과 탕산(唐山)유역에서 건국한 ​고려 왕건.

옛 발해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던 각 발해수장들이 고려에 합류한다. <고려사> 

 

송나라 기록 <송사>에는 발해국 외에,  정안국(定安國) 편 기록이 따로 존재한다. 

 

이 정안국은  거란 소손녕과 고려 서희의 담판에서 

'서쪽 여진 세력이 거란과 고려의 외교를 가로 막고 있다'라며,

여진 세력 축출이 필요하니, 거란과 고려가 힘을 합치자던 

그 세력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현재도 고려, 거란 사이 존재했다던 정안 마을, 정안 군사진영 등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고려의 강토는 서북은 고구려보다 좁았으나, 동북은 고구려 보다 넓었다 <고려사> . 

홍건적 명나라와 이성계의 조선이 양분한 고려 영토. 그들이 왜곡한 고려 역사.

과거를 완벽히 잊고 한반도에 남아있는 고려 Korea의 후손들.

 

 

8. 마치며. 영토 중심 해석의 문제, 

온갖 문헌에 기록된 단어와 위치를 

검색하면, 

이동된 지명이 있는 곳도 있지만, 중심지 교차검증을 통해  

그 역사의 현장 중심을 모두 확인 할 수 있다.

 

왜 지금껏 학계, 교수, 박사, 강사들은  다들 검색을 안 했던 걸까?

왜 비판하지 않고 암기만하여 그 자리에 올랐을까? 

왜 전문가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검증을 부정하는 걸까?  

왜 지명도 없는 한반도에서 추정, 비정하고 만주로만 해석하는 걸까? 그리고 지명을 창조할까?

 

여러분은

베이징 우측의 발해만(渤海彎)은 왜 발해만(Bay) 일까? 

발해는 왜 고구려의 뒤를 이은 나라일까?

고구려인 이정기의 제나라는 왜 우리 역사로 언급을 안 할까? 

왜 우리는 조선, 신라로 불리지 않고,  고구려, 고려 KOREA로 불릴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을까? 

 

남이 만들어 준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는 한국인들. 

 

대한민국이 바로 고구려, 고려의 직계 후손이다. 

이제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저변이 확대되며,

그 때서야 정치인도 관심을 갖게 되며, 

학계와 교단을 바꿔낼 수 있다. 

 

 

나는 집단 지성 즉, 깨어난 우리 국민들의 힘을 믿는다. 

 

 

(한국 교과서 해석, 발해만에 없는 산골 속에 존재하는 발해) .

 

 

 

글 : 고려,삼국 역사복원협회 대표이사 / 고려사 복원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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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삼국 역사복원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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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고려사복원 학회장 기자

고려사 복원 학회장
고려, 삼국 역사복원 협회 대표이사
시민혁명 출판사 대표
유튜브 책보고

저서 <한국중세사 복원 자료집> 등
공저 <책보고 99개 한국사 강의 요약서> 등
나침반365 고등학생 입시 월간지 한국사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