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조선마술사'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유승호'와 응답하라 1994에서 인기를 끈 ‘고아라’가 주연을 맡은 영화 ‘조선마술사’ 이 영화가 의정부 금오동 산45-20(산장 아파트 옆)에 실제 있었던 슬픈 역사를 배경(모티브)으로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실 겁니다. 청나로 끌려간 비운의 여인, 나라의 힘없음이 만들어낸 희생자, 위기의 조선을 구하고 환향년(還鄕女)이 된 우리의 자화상(自畵像), '의순공주(義順公主)의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에서 다루어졌습니다. 특히 연극계에서는 여러 번 다루어졌죠. 그 대표적인 연극 중 하나가 ‘극단 허리’에서 연출한 ‘환향(還鄕)’입니다. 때는 병자호란(丙子胡亂) 인조임금이 청나라의 침략에 굴복하고 머리를 땅에 3번 부딪쳐 피 흘리며 항복했다는 '삼전도의 치욕' 사건을 지나, 함께 청나라에 8년 간 볼모로 끌려갔던 형 소현세자의 병사로 동생인 봉림대군이 효종대왕이 되어 정사를 보던 1650년(효종 1) 3월의 일입니다. 조선을 삼킨 청나라는 내정간섭을 하기 위해 억지조공을 강요했는데, 그 핑계가 처녀 인피 300장과 남정네 불알 3말을 구해 오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광복절 제77주년 기념일인 15일 오후 5시 광주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는 항일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1주년을 맞아 진행된 제막식에는 강기정 광주시장과 홍우표 추진위원장, 신조야 (사)고려인마을 대표를 비롯해 시민과 고려인 후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제막식 부제는 ‘바람이 되어 카자흐스탄에서 월곡으로’였다. ‘광복군 아리랑’ 퍼포먼스와 함께 ‘부죤놉카 군모’를 쓴 홍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흉상(조각가 김희상 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흉상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모신 장군의 흉상을 모형으로 재현한 것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홍범도 장군은 항일 무장투쟁가인 의병장으로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홍범도 장군 흉상이 광주에 처음 세워진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홍범도 장군이 광주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작년 8월 ‘홍범도 장군 특별전’을 연 게 계기가 됐다. 홍 장군 유해 봉환을 기념해 열린 특별전에는 김병학 관장이 카자흐스탄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기원전 18년에 온조(溫祚) 왕자(王子)는 온조국(溫祚國)을 세우고 온조 대왕(大王)이 됩니다. 이때가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嘉) 3년(기원전 18)라고 아래의 글은 증명합니다. [及朱蒙在北扶餘所生子來爲太子, 沸流⋅溫祚恐爲太子所不容, 遂與烏干⋅馬黎等十臣南行, 百姓從之者多.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沸流欲居於海濱, 十臣諫曰.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高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作都於斯, 不亦宜乎. 沸流不聽, 分其民, 歸彌鄒忽以居之. 溫祚都河南慰禮城,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 是前漢成帝鴻嘉三年也. 沸流以彌鄒土濕水鹹, 不得安居, 歸見慰禮, 都邑鼎定, 人民安泰, 遂慙悔而死. 其臣民皆歸於慰禮. 後以來時百姓樂從, 改號百濟. 其世系與高句麗, 同出扶餘, 故以扶餘爲氏.]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살고자 하니 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서울 송파구(구청장 서강석)가 15일 77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내건 현수막에 ‘건국절 74주년’이라고 함께 명시해 선열들의 항일독립운동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송파구청 전면에는 ‘77주년 광복절, 74주년 건국절’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빛을 되찾은 그날, 나라를 세운 그날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서강석 구청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파구청과 27개 주민센터에 일제히 77주년 광복절뿐 아니라 74주년 건국절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에는 현재 120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찬반이 팽팽한 것같다. 또 송파구청 홈피의 ‘구청장에게 바란다’에는 건국절 현수막 창피하다는 게시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서 구청장은 1945년 8·15해방은 1948년 8·15 건국을 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었다고 전제하고, “1945년 8·15부터 1948년 8·15까지 미군정 시대였고 백성들이 드디어 주인으로 등극한 날이 1948년 8·15 건국절이다. 74주년 건국절이 77주년 광복절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광복절은 자유민주주의자, 공산주의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923년 1월, 단재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한다. 내년이면 선언 100주년이다. 단재는 첫 구절부터 일본을 강도(强盜)로 부른다. 왜 강도인가?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기 때문이다. 또 단재는 일제가 운영하는 학교를 ‘노예양성소’라 규정하고, 조선사람으로 학교에서 가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면, “단군을 무(誣)하여 소잔명존(素盞鳴尊, 스사노오 노미코토)의 형제라 한다”고 비난하였다. 이 말은 단군을 일본의 신(神)인 스사노모의 형제로 비유한 것이 잘못된 무고(誣告)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 이 말은 어디서 나온 말인가 그 유래를 알아보자. 1892. 8, 일본인 임태보(林泰輔,하야시 다이스케)가 쓴 <조선사>는 최초의 조선사 연구서로 알려졌다. 자칭 서양으로부터 배운 근대적 연구성과를 토대로 썼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사를 4기로 나누었다. 한군현(漢郡縣) 이전을 태고(太古), 삼국의 정립부터 신라 경순왕까지의 대략 992년을 상고(上古), 고려 태조부터 공양왕까지의 대략 456년을 중고(中古), 조선 태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의정부를 다시 품다. 1 '의정부'라는 도시의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어떤 역사적 내용을 품고 있기에 조선시대 행정기관의 이름을 도시의 이름으로 쓰게 된 것일까? 참으로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의정부라는 도시 명(名)에는 숨어 있습니다. 의정부에 사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은 보통 이렇습니다. 조선조 1400년 2차 왕자의 난 이후 방원은 제 3대 태종이 되었으나 태조(이성계)는 감정을 참지 못해 고향인 함흥으로 간다. 이에 태종은 여러 차사를 보냈지만, 부왕인 태조도, 차사와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함흥차사란 말이 생김) 이후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태조는 환궁을 하게 되고 태종은 지금의 호원동 전좌 마을까지 나와 부왕 태조의 환궁 환영 준비를 하는 가운데 신하의 의견으로 아름드리 나무로 고주 기둥을 세우는데 때마침 도착한 부왕 태조는 태종에 대한 노기가 충천하여 활궁에 철전을 매어 잡아 당겼으나 살은 연대에 꽂히고 태종은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때부터 "연대가 맞아야 산다."라는 말이 생기게 됨) -의정부애향회 카페 글 부분 인용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북부여(BCE239~BCE58) 1. 고조선 마지막 단군 고열가 고조선은 ①변한(불조선-베이징, 산동반도) ②진한 ③마한으로 나눠 다스려졌다. 진한의 대단군은 수도인 백악산에 있으면서 변한과 마한을 거느렸다. 46대 단군 보을때인 BCE296년, 한개의 난을 고열가가 진압하고, 보을 사후, 47대 단군이 되지만 건융, 북막 등이 독립을 선언하며 고조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BCE238년 단군직을 버리고 도를 닦는다며 산으로 훌쩍 들어가버렸다. 이로서 고조선 2096년 역사가 끝난다. 2.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 비류호 북쪽에 기마족 고구려(가우리)인들이 살았다. 해모수는 고열가 단군 때 23세의 나이로 군대를 일으켰고, 8년째인 BCE230년, 백악산 아사달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단군이 되었다.. 해씨를 중심으로 나라의 주요관리들을 대거 바꾸고, 오가의 욕살 등 중앙 세력들을 마한, 한반도 지역으로 내려보냈다. BCE206년, 동생 고진이 구려하를 건너 서안평까지 나아가 그동안 잃었던 변한(불조선) 북부영지를 되찾으니, 해모수가 그를 고구려 왕으로 봉한다. 그가 동명왕!! 3. 위만 BCE194년, 한고조 유방 사후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로마 1. 로마 마을 BCE753 늑대 젖 먹고 자라, 동생을 죽인 패륜남 로물루스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로마를 세웠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초기 로마인은 라티움이라는 언덕배기에 살던 농부들이었다. BCE509 잔인한 족장을 쫓아내고 자치(공화정)를 했다. BCE494 농부들이 다 모여서 기득권(귀족)에 맞서 총파업.. 귀족과 농민은 타협을 통해 '평민회'라는 정치조직을 두고 '호민관'이라는 평민 대표를 뽑아 귀족들이 이끄는 정치에 참여토록 했다. BCE451 12표법이라는 12개 조항의 법도 만들어 청동판에 새겨 광장 한가운데에 걸어놓았다. 2. 싸움 BCE390 갈리아인(현 프랑스)이 쳐들어왔고 로마는 철저히 깨졌다. 이 꼴을 보고 삼니움인도 쳐들어왔는데 이번엔 로마가 이겼다. 게다가 삼니움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얻었다. 그뒤 여러 마을들을 치기 시작해서, BCE272 로마가 이탈리아반도 통일, 8년뒤 강한 나라 카르타고(북아프리카)까지 쳤는데, 뜻밖에도 첫 승리를 로마가 가져갔다. 로마 vs 카르타고 전쟁이 이어지던 BCE218 카르타고 한니발의 코끼리 공격에 로마인은 공포에 떨었다. 16년뒤 스키피오가 한니
e뉴스와이드 김길암 기자 |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이자, 안산시를 대표하는 역사인물 최용신(1909~1935)의 삶과 업적을 조명한 도록이 발간됐다. 안산시(시장 윤화섭)는 지역의 대표 역사인물인 최용신의 삶과 업적을 담은 도록 ‘최용신기념관 학술총서 4’를 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에 발간된 도록은 최용신의 학술연구 성과 및 최용신기념관 개관 이래 수집한 주요 유물과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록한 것으로, 1995년 수여된 건국훈장 애족장을 비롯해 샘골강습소 낙성식(1933) 사진 등 모두 116점의 자료가 담겼다. 총 164페이지 분량의 도록은 최용신의 일대기를 크게 4개 주제로 구성해 설명한다. 먼저 ‘시대 변화를 이끈 신여성 최용신’에서는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 배경 하에 근대 교육과 서구 문화에 눈을 떴으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와 협성여자신학교를 거치며 당시 신여성으로서 가졌던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을 조명했다. 두 번째 주제인 ‘함께 만든 배움터 샘골강습소’에서는 1931년 샘골마을(현재 안산시 본오동)에 YWCA 농촌지도사로 파견돼 마을 주민들, 후원자들과 함께 샘골강습소를 증축 건립하고 일제의 감시에서도 우리말 조선어가 국어라고 가르치며
e뉴스와이드 김건화 기자 | 얼마전 방한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에게 소신 발언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가쓰라-데프트" 밀약 언급에 대해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17일 해당 매체의 칼럼을 통해 "이재명의 아는 체하는 역사"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칼럼의 내용에는 "가쓰라-데프트"는 협약이나 협정이 아니라 비망록 수준의 문서였다면서 "아는 체하며 남 탓이나 해서는 역사의 돌파구 마련하지 못한다" 라고 썼다. 이에 대해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명한 역사적 진실을 비틀어 국민을 속이려 드는 자들이 있다. 이재명을 공격하기 위해 역사의 진실마저 비트는 세력, 비밀외교의 현실, 미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어, 정작 아는 체 하는 자는 누구인가?" 라며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강하게 비토했다. 이에 앞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16년 종합일간지 칼럼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나쁜필진'으로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실장,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등을 선정한 바 있다. 돌이켜 보건데 군사독재시절에도 학교 역사시간에 "송평인" 과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교과서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