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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의원의 최후진술

저는 정대협에서 어떤 사익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할머니들과 했던 약속을 실행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것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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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6일 검찰은 ‘정의연 횡령 의혹’ 등으로 윤미향 의원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윤미향과 걸어가는 사람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윤미향 검찰 기소 내용의 대부분은 협의 없음과 공소권 없음으로 팩트 체크되어 있다. 윤 의원의 선고 공판은 2월 10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윤미향 의원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
먼저 제게 최후진술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최후진술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앞서 변호사님들께서 검찰의 기소에 대해 많은 내용을 변론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기소 건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난 30년 동안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만들어 온 따스한 정의가 이 곳 법정에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제 마지막 호소를 전하고 싶습니다.

2년이 넘게 진행된 아주 긴 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지난 2년은 현실적인 시간보다 몇 배나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게 되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 사건으로 인해 또다시 상처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밤마다 저를 악몽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또한 지난 30년 동안 국제적인 여성인권운동으로 자리잡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한시도 제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처지였기 때문에 이곳 법정에서 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위로가 되었고, 참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긴 재판을 공명정대하게 이끌어 피고인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신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이 겪는 참혹함과 괴로움은 제가 기꺼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지만, 저로 인해 지난 2년 반 동안 피해자들과 정대협 운동이 겪은 상처와 아픔은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득했고, 그 길을 이 법정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제가 정대협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 배고팠던 가난한 민중의 딸로 태어나 힘겹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위안부’로 학대당하고 살아남은 분들이셨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한국사회의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그만큼 피해의식도 컸고, 사람에 대한 불신도 컸습니다. 피해자로 신고하신 240명 한 분 한 분의 트라우마도 다양했습니다.

활동가들은 할머니들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1시간 여 동안 전화통화로 심한 욕을 듣다가 온 몸에 마비가 온 적도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벌어먹는 년”이라는 욕은 아마 저를 포함하여 모든 활동가들이 할머니들에게 한 번 이상은 받은 상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대협 활동가들은 할머니들의 그런 모습을 할머니들 개인 탓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의 트라우마로, 한국사회의 2차, 3차 가해의 공적인 책임으로 인식했고, 이는 한국사회 구성원인 정대협 활동가들의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쌓이고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서로 가족같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욕을 해서 미안했다는 고백도 듣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유엔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함께 손을 잡고 누비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2012년부터 나비가 되어 콩고와 우간다, 코소보, 나이지리아 등으로 찾아간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나비기금은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호소합니다. 할머니들께서 걸어오신 인권운동가의 삶이, 세계로부터 영웅으로, 희망으로 평가받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활동이 자의식 없이 비주체적으로 활동가에게 끌려 다닌 운동으로 폄훼되지 않도록,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피해자들은 몇 분 남아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 240분 신고하신 피해자 중 지난 주 한 분 돌아가셔서 현재 10분만 생존해 계신 상황입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약해진 틈을 타 일본정부는 가해자의 범죄인정도, 사죄도, 배상도 없이 한국정부가 소녀상 철거,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에서 비난 중지, 이면합의로 성노예 용어 사용금지 등을 약속했던 2015‘위안부’문제 한일합의로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끝났다면서 한국정부에게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고, 세계 각지에 세워진 소녀상 철거를 위해 외교력을 펴고 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는 수요일마다 ‘위안부 앵벌이 윤미향을 구속하라’는 커다란 현수막과 함께 김학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피해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와 폄훼, 인권유린의 구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독일 베를린 소녀상까지 한국 극우단체들이 찾아가 소녀상철거 요구집회를 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망언들을 쏟아내서 독일 시민들에게 충격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청년들이 만든 한 작은 기업 마리몬드는 역사에서 상처받은 할머니들의 삶을 숭고함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할머니 한분 한분을 아름다운 꽃으로 재현하고, 기업의 수익금은 여성인권 활동에 환원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 사건을 통해 불이 붙기 시작한 사이버상의 온갖 혐오와 공격은 결국 그 기업이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청년들은 직장을 잃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곁에서 떠나갔습니다.

제 개인의 고통과 별개로 제 사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을 두 눈 뜨고 지켜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지난 2년 반의 시간이었습니다.

피해자들과 활동가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겪고 있는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멈추기 위해 저는 죽음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 죽음 앞에서 ‘희망이 되겠다’ 했던 약속, 강덕경 할머니의 마지막 병상에서 ‘할머니 가셔도 할머니 몫까지 다하겠으니 믿어달라’ 했던 약속, 황금주 할머니께 ‘할머니 떠나셔도 일본정부의 사죄, 꼭 받아 내겠다’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고, 이를 위해 재판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임해 왔습니다.

공의의 상징인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호소합니다.
저는 제 개인의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의도로 정대협에서 일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절절한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정대협에서 활동한 30여 년의 기간 동안 함께 일했던 제 동료들은 세상이 주는 경제적인 대가와 보상이 없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기여했다는 보람을 보상으로 여기며 살아온 활동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활동가들의 고통을 지난 2년 반 동안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께 호소합니다.

저를 포함하여 4-5명에 불과한 사무처 활동가들은 내부의 많은 회의들을 준비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수요시위 진행, 전국의 피해자 방문과 복지활동, 박물관 건립과 운영,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피해자 기림 활동, 아시아피해자 지원과 연대, 미래세대 교육활동,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역사교육 이행 요구 활동, 유엔과 국제인권기구 활동, 회원참여활동 등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야근도 거의 매일, 박물관 운영 때문에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하는 등 수 많은 일들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전국의 생존자를 방문할 때에는 몇 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국을 운전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행정과 회계 상의 미숙함 등 부족함이 있었음을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재판을 통해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모두 대표였던 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툴고 부족했지만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익을 추구할 의도로 정대협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다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며 평화의 날갯짓을 힘껏 펼칠 수 있도록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서 지혜로운 판결로 도와주시기를 호소합니다.

2020년 5월 7일, 그 날로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은 삶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연일 확인되지 않는 수십 개의 악성 기사들이 터져 나와 일일이 대응할 여력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무혐의로 불기소된 내용들조차 여론에 묻힐만 하면 다시 기사화되어 그 기사는 다시 대중들과 정치권에서 저를 마녀로 공격하는 화살촉이 되어 날아왔습니다.

제 가족 또한 너무나 극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딸이 하는 일 도와주려고 하시다가 딸의 횡령에 관련된 것처럼 언론에 도배되고 공격당한 제 아버지는 검찰 조사를 받은 후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 했고, 병원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제 딸은 위안부 할머니들 후원금 횡령해서 유학하는 뻔뻔이로 왜곡되어 비난을 받아야 했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어려운 과정 다 통과하고 입학절차까지 밟아놓고서도 진학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혐의로 불기소 되었지만 이와 관련한 수많은 기사를 썼던 기자도 언론사도 해명기사 하나 내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인터넷 상에는 해당 기사들이 2차, 3차 생산물이 되어 악성댓글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앞세워 앵벌이를 했다며 아파트 앞까지 찾아와 집회를 하는 보수 유투버들로 인해 저와 제 가족의 사생활의 공간은 주변에 다 드러났고, 아파트 현관문까지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던 기자들 때문에 집에 홀로 있던 제 딸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제 딸의 실명과 사진을 인터넷상에 게시하고, ‘윤미향의 딸년을 일본에 성매매원정단으로 보내자’는 등의 사이버성폭력이 벌어졌고, 제 딸에 대한‘살해’와 테러를 요구하는 글들까지, 일일이 대응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상황들이 벌어졌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기독교신앙 속에서 자란 저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여자 목사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98년에 일본 남자들이 한국에 기생관광을 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저를 기생관광을 반대하는 한국교회 여성들의 활동에 함께 목소리를 내게 했습니다.

그 이후 지난 공판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1992년부터 정대협에서 간사로 일하게 되어 사무처장, 대표를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참 많았습니다. 다른 안정적인 직업을 여러 차례 제의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목사가 아닌, 거리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결심을 버릴 수가 없었고, 할머니들이 갖고 계신 피해의식에 저마저도 하나 더 보탤 수 없다는 생각으로 2020년 봄까지 정대협, 정의연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대협에서 어떤 사익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에 일본정부가 할머니들이 원하는 해결을 하게 할 수 있을까, 70년 전 과거 문제를 어떻게 하면 2000년대를 사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끊이지 않고 관심갖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너무 무겁지 않게 할머니들의 역사에 관심갖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와 아시아 여성들이 겪은 문제를 세계가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나라 혹은 그 지역의 문제로 안고 연대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수많은 고민들을 하며 지난 30년 동안 일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것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호소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제 생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할머니들과 했던 약속을 실행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따스한 정의가 이 곳 법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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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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