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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반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1)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최남선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파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 나파륜 : 나폴레옹

 

(『소년』 창간호, 1908.11)

 

 

<이해와 감상>

 

근대 잡지의 효시인 『소년』 창간호 권두시로 발표된 이 작품은 서구 자유시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최초의 신체시(新體詩)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전대(前代)의 고전시가 형식인 3・4조 내지 4・4조의 엄격한 율격을 깨뜨렸지만, 각 연의 대응되는 행의 자수(字數)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창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연씩 떼어놓고 볼 때는 정형적 자수율을 전혀 갖지 않은 자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아울러 독자에게 바다의 웅대함을 느끼게 하는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와 같은 의성음(擬聲音)까지 사용하는 파격적 (破格的) 리듬을 창조한 점에서는 근대적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년』지 창간 당시, 불과 17세이던 육당은 잡지명을 의도적으로 『소년』으로 택하여, 전통 문화와 고유 사상이 몰락해 가는 파산(破産) 직전의 국운(國運)의 현실에서, 조국의 희망과 새 시대의 상징으로서 소년이 나아가야 할 지표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도 전래의 사고 관습에서 거의 제외되었던 소년과 바다를 함께 내세우고 대조시켜 망망대해에 도전하는 젊은이의 씩씩한 기상을 고무하는 내용을 역설함으로써 힘과 용기를 잃은 소년들에게 애국적 포부와 미래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모두 6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는 내용상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부터 5연까지의 첫째 단락은 ‘바다의 웅대함’을 노래하고 있으며, 둘째 단락인 6연은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소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읊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권력이나 세속적 부귀 영화에 굴하지 않는 존재를 비유하고 있으며, 순진 무구(純眞無垢)한 소년들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들이 바다와 같은 웅대한 포부를 갖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렇게 바다는 새로운 세계와 문명 개화, 무한한 힘과 새로움의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으나, 소년과 바다가 지극히 화해 관계로만 놓여 있어 육당이 의도하고 있는 힘과 순결성이 방향을 잃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적 낙관론이 너무 짙게 깔림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지적과 함께 최초의 신체시가 아니라는 비판, 그리고 ‘바이런’의 시, <차일드 헤롤드의 순례>의 모방작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지만, 이 시가 당시 국민적 계몽시로 등장하여 우리 현대시에 끼친 공로만큼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