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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방랑(放浪)의 마음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동명』 18호, 1923.1)
<이해와 감상>
하루 200개비의 줄담배를 피우며 일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다 세상을 떠난 공초(空超) 오상순은 변영로와 함께 『폐허』 동인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를 버리고 입산과 환속을 거듭하는 등 숱한 기행(奇行)으로 화제를 뿌렸던 시인이다. 그는 평생을 이 작품의 제목처럼 ‘방랑의 마음’으로 전국을 떠돌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의 일탈(逸脫)’로 영위하려 하였다.
이 작품은 일제 치하라는 현실의 질곡(桎梏)을 벗어난 이상향을 그리워하며 정처없이 떠도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곳은 ‘망망한 푸른 해원’으로 ‘눈을 감고 마음 속에’ 그리는 바다일 뿐이다. 즉 현실의 바다라기보다는 시인의 이상 속에 존재하는 바다요, 현실의 모든 고뇌로부터 떠난 자유와 안식의 바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 깊은 바닷소리’는 내 몸 속으로 ‘피의 조류를 통하여 오’지만, 그 곳으로 갈 수 있었던 ‘때를 잃고’, 다만 끝없는 그리움으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발돋움하고 /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는 그 바다는 시인이 식민지라는 민족적 고통을 안고 꿈꾸는 곳으로, 결국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젊은 시인의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영혼이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푸른 해원’과 같은 곳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