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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반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11. 봄비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1. 봄비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신생활』 2호, 1923.3)

 

 

<이해와 감상>

 

1920년대 전반기 한국 서정시의 정상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논개>와는 달리 고요하고 잔잔한 시정(詩情)을 세련되고 섬세한 시어로써 유려하게 노래하고 있다.

 

각 연의 1・2행에서는 공통적으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를 반복하여 봄비의 부름과 그에 대한 시인의 정감을 한 문맥에 접목시키고 있으며, ‘노라!’・‘누나!’ 등의 영탄조의 어미 사용은 이 작품을 보다 더 낭만적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와 같은 반복구(反復句, refrain)는 시의 리듬을 교묘하게 살리는 데 효과적인 표현법이 되고 있다.

 

각 연의 마지막 행은 봄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느낀 시적 자아의 마음을 ‘서운하고’, ‘아프고’,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편향적 어조와 함께 시인의 감각적인 통찰로 빚어진 이 작품의 아름다운 정감과 선율은 그윽하고 부드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