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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반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12. 논개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2.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신생활』 3호, 1923.4)

 

 

 

 

변영로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러 충신과 열녀들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여 섬세한 전통 정서와 기개 높은 민족 정신으로 형상화시킨 시인이다. 이 작품도 이와 같은 그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의 하나로,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倭將) 게다니(主谷村六助)를 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 충절(憂國忠節)을 노래하고 있다. 동시대 『백조』 동인들이 암울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여 한숨과 눈물만을 토로한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시를 쓴 데 비해, 그는 민족적 패배감에 젖어 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논개’의 우국 충절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주었다.

 

1연에서는 논개의 거룩한 분노와 애국적 정열을, 2연에서는 물로 뛰어드는 논개의 거룩한 순국 모습을, 3연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통하여 논개의 충혼(忠魂)에 대한 추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왜적에 대한 논개의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한’ 것이므로 각 연에 첨부된 후렴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단심(丹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강낭콩과 강물의 푸른색, 양귀비꽃과 석류 속의 붉은색을 대립시키는 방법으로 논개의 정열을 강조하는 이미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므로 각 연에 반복되는 후렴이 바로 이 시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한편,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사군자(四君子)와 같은 진부한 소재를 쓰지 않고, ‘강낭콩’・‘양귀비꽃’・‘아미’・‘석류’와 같은 토속적 분위기의 소재를 빌어 참신한 이미지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푸른 강물’은 ‘영원한 역사’를 상징하므로 진주 남강이 마르지 않고 푸르게 흐르는 한, 논개의 충절도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령이 내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