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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반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13.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3.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발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 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 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흗날 밤, 맨재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러웁게 놀리더이다.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 시왕전 : 저승에 있다는 10여 명의 왕을 모신 절간의 법당.

* 상두꾼 : 상여를 메는 사람.

* 감중련 : ‘팔괘(八卦)의 하나인 감괘(坎卦)의 상형(象形).

방위는 정북(正北),‘물’의 상징. 여기서는 ‘태연히 함’의 뜻.

 

(『백조』 3호, 1923.9)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의 감상적(感傷的)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삶의 고통과 비애를 주제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백조』의 실질적 주재자로 활동한 홍사용의 타고난 감상벽이 그 한 원인이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3・1 운동의 좌절로 인한 민족적 패배감과 지식인으로서의 견딜 수 없는 무력감으로부터 이 작품의 감상적 경향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병적이고 퇴폐적인 성향의 정서 저변에는 일종의 민족적 울분과 시적 서정성이 깔려 있다.

 

전 8연의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에서는 전생(前生)을, 2연에서는 출생의 슬픔을, 3연부터 8연까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 희망과 좌절, 내면적 슬픔 등 소년 시절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를 ‘왕’으로 지칭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갈고 심을 땅을 일제에 빼앗긴 농군의 아들인 그로서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쫓겨난 왕으로 슬픔과 비애뿐인 ‘눈물의 왕’이 된다. 그가 갖게 된 삶의 비극적 인식은 어머니의 산고(産苦)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과 ‘으아!’ 하는 울음으로부터 삶이 시작되었다는 인간 존재의 숙명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비애의 감정은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고통과 슬픔을 안고 태어난 ‘왕’에게 동네 사람들은 단지 ‘무엇이냐?’는 세속적 관심만 나타낼 뿐이며, 그럴수록 ‘왕’은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옛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한숨과 눈물을 짓던 어머니를 따라 허무 의식을 키우던 그는 동무들로부터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는 놀림을 받으며 더욱 폐쇄적 성격의 아이로 성장한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면서 나무꾼의 산타령을 배우거나 상두꾼의 구슬픈 만가(輓歌)를 들으면서 ‘눈물의 왕’이 되어가던 중, 우연히 발견했던 ‘파랑새’를 놓치고 그는 거의 절망적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식날 성묘를 떠나기 앞서 ‘흰 옷’을 입혀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하신 어머니의 엄명 때문에 그는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모가지 없는 그림자’란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비극적 숙명을 뜻하며, ‘파랑새’는 자신의 이상 또는 희망을 상징한다.

 

또한 ‘흰 옷’은 성년(成年)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때부터 ‘죽음’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아픔을 속으로 키우며 ‘쫓긴 이의 노래’ 같은 좌절감을 안고 생활하는 그에게 산천 초목조차 무심하며, 세월은 허망하게 흐를 뿐이다. 결국 그는 ‘돌부처’ ― ‘미륵불’에게도 구원받지 못하는 신세로, 철저한 고독과 비애 속에서 처절한 ‘눈물의 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당시의 현실 상황과 연관지어 ‘왕’을 조국으로, ‘어머니’를 식민지 이전의 조국인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면, 일제의 탄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왕’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은 식민지라는 민족적 슬픔뿐이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모가지 없는 그림자’를 가진 그는 ‘망국의 한(恨)’을 안고 살아 가는 ‘눈물의 왕’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년이 된 후로는 마음대로 울 자유마저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 탓으로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디든지 설움만 존재하는 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