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3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교육일반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15. 사(死)의 예찬(禮讚)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5. 사(死)의 예찬(禮讚)

 

                                                         -박종화

 

 

보라!

때 아니라, 지금은 그때 아니다.

그러나 보라!

살과 혼

화려한 오색의 빛으로 얽어서 짜 놓은

훈향(薰香)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검은 옷을 해골 위에 걸고

말없이 주토(朱土)빛 흙을 밟는 무리를 보라.

이곳에 생명이 있나니

이곳에 참이 있나니

장엄한 칠흑(漆黑)의 하늘, 경건한 주토의 거리

해골! 무언(無言)!

번쩍거리는 진리는 이곳에 있지 아니하냐.

아, 그렇다 영겁(永劫) 위에.

 

젊은 사람의 무리야!

모든 새로운 살림을

이 세상 위에 세우려는 사람의 무리야!

부르짖어라, 그대들의

얇으나 강한 성대가

찢어져 해이(解弛)될 때까지 부르짖어라.

 

격분에 뛰는 빨간 염통이 터져

아름다운 피를 뿜고 넘어질 때까지

힘껏 성내어 보아라

그러나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흐트러진 만화경(萬華鏡) 조각

아지 못할 한때의 꿈자리이다.

마른 나뭇가지에

고웁게 물들인 종이로 꽃을 만들어

가지마다 걸고

봄이라 노래하고 춤추고 웃으나

바람 부는 그 밤이 다시 오면은

눈물 나는 그 날이 다시 오면은

허무한 그 밤의 시름 또 어찌하랴?

얻을 수 없나니, 참을 얻을 수 없나니

분 먹인 얇다란 종이 하나로.

 

온갖 추예(醜穢)를 가리운 이 시절에

진리의 빛을 볼 수 없나니

아, 돌아가자.

살과 혼

훈향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거룩한 해골의 무리

말없이 걷는

칠흑의 하늘, 주토의 거리로 돌아가자.

 

(『백조』 3호, 1923.9)

 

 

 

<이해와 감상>

 

박종화의 초기시 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이 작품은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퇴폐적이고 세기말적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탈리아의 작가 ‘단눈치오’의 탐미적 소설 <죽음의 승리>에서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다고 하며, 작품 자체의 우위성(優位性)보다는 『백조』류의 ‘병적 낭만주의’의 전형으로 시사적(詩史的) 위치가 중요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현실을 떠난 죽음의 세계에서 진리와 영원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작품은 현실 도피성 문학의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죽음에 대한 표면적 현상만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본질적 성격을 노래함으로써 생의 부정이 아닌 생의 차원 높은 긍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그가 희구하는 죽음의 세계는 ‘장엄한 칠흑의 하늘, 경건한 주토의 거리’로 ‘영겁’ 위에 ‘생명’・‘참’・‘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곳에서 참다운 생명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얻고자 하나, 그 곳은 구도 정신을 통해 생사를 초월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차원 높은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