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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반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18.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8.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양주동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 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문예공론』, 창간호, 1929.5)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민족 부활의 미래를 ‘튼튼한 젊은이’・‘어린 학생’・‘갓난 아이’ 등에서 발견하고 민족주의의 바탕 위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조선의 맥박’에 굳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는 계몽성이 강한 교훈적 내용의 작품이다.

 

생경한 비유와 산문적 서술, 그리고 ‘-이로다’ 등의 전근대적 영탄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족주의를 이념적으로 추상화시키지 않고 ‘맥박’・‘숨결’ 등의 생명적 요소로 파악하여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한밤’ → ‘새벽’ →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상 전개와, 여기에 상응하여 ‘절망’ → ‘희망’ → ‘활기’로 펼쳐지는 시적 상황의 변화는 추상적인 내용을  더욱 구체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