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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르네상스는 이태리 중심에서 스페인 중심으로 이동했고, 16세기 루터, 칼뱅 종교개혁의 시기를 지나, 17세기를 모더니티가 움튼 시기로 본다. 신은 가고, 사람 중심으로 보면서 과학이 꽃피려 한 시기다. 17세기를 살면서 가장 현대적 생각의 싹을 틔운 사람이 토머스 홉스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공화정이 들어선 시기이기도 하다. 왕권신수설 왕당파에 맞서 시민들이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정치세력이 맞서던 시대에, 홉스는 왕당파였다.
"나는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리버풀(항구)에서 스페인 함대 침입할까 두려워 떨던 엄마가 칠삭둥이를 낳았는데, 그게 홉스! 아빠는 핫바리 목사로 도박에 빠지고 맨날 싸우고 다녔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홉스는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데 불신이 있었고 평생 혼자 살았다. 93세까지 살았다.
1. <리바이어던>
영국 당파싸움에서 공화파가 집권하니까 잡혀죽을까 두려웠던 왕당파 홉스는 파리로 도망갔다. <리바이어던>을 썼다. '리바이어던'은 욥기에 나오는데,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철갑을 두른 채 엄청난 고통을 주는 상상속 괴물이다. 리바이어던=나라.. 나라를 '인격화된 괴물'로 본 거다.
2. So-Ciety(소-키에타스) vs Communitas(코뮤니타스)
'사회계약론'이 '리바이어던'에서 나왔다. '사회계약론'은 뭔가?
사회(So-Ciety)는 '소-키에타스'로 '서로를 위해 모인다. 공익을 위해 모인다'는 뜻이다. 로마말기에 생긴 낱말로 가족이 모이고 마을이 모이는 등 나라 이전에 모인 모든 걸 일컫는다.
공동체(Communitas)는 '코뮤니타스'로 '내 뜻과 관계없이 속함'이란 뜻을 가진다. 자발적으로 가입했으면 '소-키에타스'.. 부모와 자식은 공동체적 관계이고, 부부는 '소-키에타스(사회적 관계)'다. 'Co'는 '강력한 결속력'을 뜻하는데, 사회의 'So'는 강력한 결속력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사회가 일정한 합의를 통해서 나라를 만든다는 게 '사회계약'!!
그 이전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가족연합, 호족연합, 씨족연합, 즉 '코뮤니타스(의 결합)'였는데, 홉스는 "아니다, '소-키에타스(의 연합)'이 나라다"라는 발상을 한 거다. 개인들이 나라를 이루는 주권자로 처음 자리잡게 한 이론이다.
서양은 씨족이 귀족이 되고 그들이 연합체가 되고 그 중에 왕을 뽑는 식이어서 '코뮤니타스' 성향이 짙고, 동양은 오래전부터 과거제를 통해 관료와 기득권을 이루었기에 '소-키에타스' 성향이 짙었다. 근데 17세기 '개인'이 화두가 되면서 홉스가 '소-키에타스' 개념을 들고 나온 거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서 생각과 뜻을 나누는 걸 통해 모아진 합의체가 '사회'!! 각자가 자기 이익 계산을 하는데, 모여서 말나누다 보면 약간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제 이익도 도모하면서 약간의 양보도 이루어져야 함께 할 수 있는 거다.
'사회'의 부분집합 중에 '회사'가 있다. 오직 '경제(이익)'만을 위해 모인 '소-키에타스'인데, 가장 막강해졌다. 회사가 모인 게 시장!!
내가 죽으면 내 자식은 어찌 되나? 이 문제를 풀자고 '소-키에타스'를 이룬 사람들이 '조합'을 만들었다. 이게 '사회복지'의 출발점이다. 노조, 공적부조, 연금도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사회복지'의 중요한 역할을 어느 순간부터 '나라'가 떠맡기 시작한 거다. "야, 이거는, 애들 급식 같은 거는 나라가 감당해야지" 하는 식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거다. '사회(소-키에타스)'가 복지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동력이었는데, 그것을 강화시킨 게 '사회주의'!!
3. '공포'라는 바탕에서 '신(신격화된 존재)' 중심 생각이 움틈.. "신(적 존재)에게 의탁해 생존을 도모하자~~"
정글에서는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선악이 없고, 그 논의가 무의미하다. 뿔뿔이 흩어진 개인은 극단적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다.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황에 놓인다. 지적, 신체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고 강한 사람도 '뭉친 사람들'을 당해낼 수는 없다.
자연상태에서 가장 안 좋은 건, 나는 약속을 지키는데 상대는 약속을 안 지키는 거다. 가장 좋은 건, 남들은 다 약속을 지키는데 나만 약속을 안 지키는 거다. 이걸 '무임승차'라 한다. 나라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임승차'를 차단하는 거다. 그래서 나라가 절대적 관리능력을 가져야 되고, 모두가 거기 복종해야 하고, 관리자로서의 '군주'가 등장하는 거다. 홉스 논리의 출발은 사회과학적인데, 결론은 '절대왕' '태양왕'으로 냈다. '신'의 자리에 '군주'를 놓고, '십계명' 대신에 '계약'을 놓은 거다. "군주에 내 생명을 의탁하오니 날 지켜주옵소서" 이런 멘탈리티!!
온갖 똑똑한 척은 다 했는데, 결국 자기 공포를 산신령한테 맡긴 거다. 정신상태가 똑같다. 군주를 산신령 취급한 거다. 욕망을 가진 한 사람일 뿐인데, 그가 절대자일 리가 없잖나? 그 사람한테 내 생명과 재산을 다 맡긴다는 게, 사고실험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 어찌 가능하겠나?
사바나 시절, 사람의 생각바탕을 자극하는 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포다. 공포의 바탕은 뭘까? 사자일까? 근데 사자보다 더 무서운 건 덤불이다. 덤불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를 때, 더 무섭다. 덤불 안에 사자가 있다는 걸 알면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무섭지만 대처할 수 있다. 그 덤불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를 때 불안이 가장 크다. 미지의 포식자, 자연재해, 사람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사람 욕망의 총아인 게 현재는 '주식 시장'이다.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공포의 본질이다. 이 불확실성의 공포를 맞닥뜨렸을 때, 사람마다 대처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최대한 내 자원, 내 꺼를 확보한다. 그 자원으로 나를 보호하고, 계급을 만들고 위계를 만들고 질서를 만든다. 나는 내가 애써서 가진 거니까, 못 가진 사람은 능력이 모자란 것이고 자기 책임인 거로 본다. 윤리가 없던 시절에 출발한 거니까 '권리'인 거다. '사유재산'이 절대 정의인 거다. 이게 우파의 정신 뿌리가 이거다. 미국남부에서 '총 소유'에 집착하는데, 날 지키려면 총 있어야 한다는 게 이런 생각인 거다.
그런데 그런 생각 가진 사람만 있겠냐? 내가 살아남기에 필요한 자원이 한정돼 있는데, 위험을 잘게 나눠서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이자는 생각을 하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연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평등이 중요해진다. 비슷비슷하게 나눠줘야 하는데, 어떤 한 놈이 더 많이 먹는 걸 아는 순간, 이 연대가 깨진다. '평등'이 중요하고 '분배'가 중요하다. 이쪽 무리 사람에게 중요한 엔진은 '염치'!! 저쪽 무리 사람의 엔진은 '욕망'이고..
4. 동물적 생존본능 vs 사람적 연대본성
불확실성, 공포를 상대하는 다른 두 적응이 '좌'와 '우'의 원형질이다. 바이킹후손들이 우리보다 평화를 사랑하고 더 훌륭한 유전자를 타고 났을 리가 없잖나? 근데 왜 북유럽은 지금 가장 훌륭한 복지국가가 됐지? 걔네는 어떻게 '각자가 타고난 불확실성 공포'를 다룬 거지? '우'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사회가 공포스럽지 않도록 사회가 관리한 거다. 사람들과 무관하다. 그 사람들도 남아공에 갖다놓으면 완전히 달라진다. 바이킹 나온다. 시스템의 결과!!
'좌'가 하나의 세계관이고 철학이고 정책이라면, '우'는 겁먹은 동물의 반응!! 바보는 아니니까 '논리'를 개발하고 우의 논리도 쌓여가는 거다. 홉스는 겁먹은 동물!! 지 머리를 열심히 거기에다 쓴 거다. 지금으로 보면 태극기부대다. 홉스는 '절대군주'로 생각했지만, 지금 태극기부대는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생각하는 거다. 우리를 지켜주실 분(?)을 위탁하는 거다.
연대가 중요한가, 활동공간을 넓히는 게 중요한가 하는 싸움이 19세기에 강력하게 있었다. 좌 기질, 우 기질 사람은 늘 뒤섞여 살아왔는데, 사고실험을 통해 좌로 극단화한 게 마르크스, 우로 극단화한 게 여럿인데 홉스도 그 중 하나..
우파들이 우국지사, 곤조, 결기를 보여줄 때 사람들이 열광하게 돼 있다. 그게 훨씬 직관적인 까닭이다. 좌파적인 해설과 논리보다 훨씬 와닿는다. 그때 매료되는 건데, 한국 현대정치에서 우파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모시려 하지도 않는다. 김구선생 안 모시잖나.. 그래서 우리가 모시고 있잖나.. 내가 더 많은 자원을 독차지해서 내가 더 살아남는다는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 날보수!! 보수도 아니다. 동물이지~ 날짐승!! 세계관이 아니라, 얘네는 '반응'인 거다. 그래서 얘네는 위계가 중요하다. "내가 몇번째 먹어야 돼?" 여기에 목숨 건다. 5번째여서 불만도 있으나, 더 큰 불만은 내가 3번째인지, 5번째인지, 7번째인지 모르는 거다. 함부로 내 앞에 1번이 있는데 그거 먹었다가는 죽거든... 그게 포식자의 세계다. 내가 3번째이면 3번째임이 꼭 확인되어야 한다. 이게 확인되면 편안하다.
5. '생존본능'에 한스푼 더.. (그 한스푼이 없으면 그냥 생존충~~)
보수라 하려면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매력적이 되려면 '가오'가 있어야 한다. 개는 개밥 앞에서 자존심이 없잖나? 매천 황현, 백범 김구 같은 분이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싹 버려버렸잖아? 그 끝판이 뭐냐? 윤석열! 어떻게 저렇게 발가벗은 사람을 대표로 세워? 가오가 없으니까 생존본능만 남는 거다.
사바나 시절에는 창을 쥐고 내 꺼만 챙기는 거였다. 이명박 시절쯤 되면 그게 '돈'이다. '창' 대신 '돈' 들고 하는 거다. 윤석열은 그게 '법'이다. '창'으로 찌르던 거, '법'으로 찌르는 거다. 17세기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거다.
법은 'Right'가 있고 'Law'가 있다. 'Right'는 권리 중심의 법이고, 'Law'는 의무 중심의 법이다. 홉스는 이 둘을 잘 버무려, 자연상태에서 하나의 권리가 있는데 그게 '자유'라 했다. 고대의 '자유'란 한마디로 하면 '신분'이었다. 가족 대표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 '주권'!! 노예에겐 없는 것!!
홉스에 와서 완전히 '자유' 개념이 바뀐다. '주권'은 자유가 아니고, 자유란 '간섭받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 거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주권'에 무게중심을 많이 둘수록 진보적인 거다. 반면에 "나라는 개인을 건들지 마. 나라는 그냥 조정만 해줘. 개인들 냅둬. 간섭하지 말고" 라는 생각의 뿌리가 홉스다. '자연상태에서의 권리(자연권)'라 했다. 사바나 약육강식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에서 "어머, 내가 더 많은 자원을 챙겨서 살아남아야지" 한 것을 그럴 듯하게 '자연권'이라 한 거다. "내가 살아야 돼! 일단 내가 살고 볼 거야! 나라고 뭐고 간에~!" 이 권리를 신성시 한 거다. 이게 생존본능이고 반응이다. 이게 뭐 '세계관'이 아니다. '반응'일 뿐~~
보수 개념이 근대에 정립되는 첫 출발이 홉스의 '자연권' 개념.. 보수 라인 원조로 '신자유주의'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그 반대편 원조가 루소.. 중간에 만나는 사람이 로크..
다들 똑같이 '사회'를 '계약'으로 보았으나, 생존 자체가 무섭고 공포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홉스 같은 사람이다. 경계하고 타협하는데, 힘센 놈이 누군지 두리번거리고 거기 붙는다. '자기보존' 생존충!! 자기 공포반응을 머리로 풀어낸 거다.
6. 생존충 정치인이 몰고오는 결과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할 때 '공익을 위해서 함께 한다' 는 뜻으로 '소-키에타스'라 하는데, 이 말을 치를 떨며 싫어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마가렛 대처! 대처는 가장 극악무도하게 정치를 야성의 싸움으로 바꿔버린 자이다. 대처 칭송하는 이들 보면 너무 웃기다. 박근혜가 롤모델로 '대처'로 꼽았었다. 왜 대처를 롤모델로 하냐 물으니 답을 못했다. 2003년 인터뷰 때였다. 보수도 '머리와 가슴'이 있는 자를 내세워야지, 박근혜 같이 머리가 빈 자, 이명박처럼 가슴이 빈 자, 윤석열처럼 머리와 가슴이 모두 텅 빈 자를 내세우면 어쩌자는 거냐? 보수라는 자들(실은 토왜)의 이런 선택 때문에, 나라만 불행한 게 아니라, 낱낱의 민중이 불행해지고, 글로벌하게 불행해진다.
7. 혐오적대 대신 이해하고 품어 앞으로 나아가야~~
생존불안, 존중불안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하는데, 여기에 대처를 "자원확보로 계급질서 세우고, '난 냅둬유'"로 할지 "연대하고 잘 나누어, '함께 해유'"로 할지로 나뉜다. 38억년 이어져온 동물본능에 200만년간 사람본성을 쌓아오며 지금의 사람무리가 이루어진 바, 양쪽은 배격대상이 아니라 높이 멀리 나는 데 꼭 필요한 양쪽 날개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 "내가 더 많은 자원을 독차지해서 내가 더 살아남는다"는 본능만 붙들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완전히 적대하기만 해서도 답이 안 나온다.
단, 생존충 반응이 최소한의 양심, 염치, 사람다움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날것의 모습으로 나다니는 건 집단지성이 가만 둬선 안 된다. 민중의힘으로 날짐승은 억누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