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환단고기 1. 환단고기 삼성기三聖紀(상) / 안함로(安含老 579~640) 지음 삼성기三聖紀(하) / 원동중(元董仲 1330~?) 지음 단군세기 / 홍행촌수(紅杏村叟) 이암(李嵒 1297~1364) 지음 북부여기 /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世東 ?~1395) 지음 태백일사 / 일십당주인(一十堂主人) 이맥(李陌 1455~1528) 지음 삼성기(상) 1권, 삼성기(하) 1권, 단군세기 1권, 북부여기 2권, 태백일사 8권, 이렇게 5명이 쓴 5종 13권 역사서 1) <삼성기(상)> 저자는 안함로(579~640)는 신라 때 도승으로 선덕여왕 때 황실 고문.. 환국-배달-단군조선 역사에 대해 간명하게 썼는데, 심원한 우주사상, 신관, 또 인간관이 담겨 있다. 환국-배달-조선-북부여에서 고구리로 이어지는 국통 소개! 2) <삼성기(하)>를 쓴 것은 고리말 인물 원동중=이방원의 스승 원천석(元天錫 1330~?).. 강원 원주에 그를 기린 창의사(彰義祠 사당)와 묘소 있다. 3) 원동중의 스승이 47세 단군왕검의 역사를 정리한 고성固城 이씨 문중 이암(李嵒 1297~1364)+아우 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리국 본기(高句麗國 本紀) 제6 (2부) 14. 27세 영류무장태혜천황제=함통제(고성高成, 618~642), 년호: 건무建武 좌장군 고성(高成 27世 영류제榮留帝)은 속으로 수나라와 친할 마음이 있어 은근히 막리지(莫離支 연개소문)의 북벌계획을 막았다. 이때 고성高成은 여러 차례 청해서 출사하여 백제를 공격함으로써 공을 세웠다. 그러나 막리지는 홀로 대중의 의견을 물리치고 남수북벌(南守北伐策 남쪽을 현상유지하고 북쪽을 공략)의 정책을 고수했다. 여러차례 이해관계를 들어 말하므로 대중이 이 말에 따르게 되었다. 마침내 618년 고성高成이 즉위하니(영류제) 전 황제(영양제)의 모든 정책은 폐기되었다.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노자의 상老子像을 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도덕경道德經을 듣게 하였다. 또 무리 수십만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으니 부여현夫餘縣~남해부南海府에 이르는 1천여 리이다. 이때 서부대인 연개소문은 도교道敎를 강론하는 것과 장성 쌓는 일을 그만 둘 것을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극진히 설득하려 했으나, 열제는 기꺼워하지 않고 연개소문의 병사를 빼앗고는 장성을 쌓는 일의 감독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태백일사(太白逸史)>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고구리국 본기(高句麗國 本紀) 제6 (1부) 1. 해모수(解慕漱 BC239~195) 고구리(高句麗)는 시조 단군 해모수(解慕漱)로부터 나왔다. 웅심산熊心山에서 부여의 옛 도읍로 내려와 군사를 일으켰고 무리의 추대를 받아 마침내 BC239년(고열가 57) 4월 8일 부여(북부여)를 세운다.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시종하는 자들이 백여명이었다.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나라 안이 저절로 잘 다스려져 산에는 도적이 없으며 들에는 벼와 곡식이 가득하니 나라에 큰일이 없고 백성百姓도 또한 근심이 없었다. 2. 1세 고주몽 성제(高朱蒙 聖帝 BC37~BC19) 년호: 평락平樂 해모수解慕漱 단군의 현손(북부여 6대 모수제慕漱帝의 막내아들)으로 60세의 모수제(慕漱帝 고무서高無胥 BC76~BC59, 생몰 BC118~BC59)가 16세의 유화(柳花 하백河伯 옥두진의 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고주몽高朱蒙이 동부여 금와왕(金蛙 BC62~BC7 생몰 BC90~BC7) 왕실에서 살다가, 왕자 대소(帶素 BC7~AD22)의 위협을 느끼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독도지킴국민행동본부는 대한민국의 민간 단체로서 독도의 영유권을 지키는 임무를 가지고 국민들에게 독도의 중요성을 알림으로써 한국의 영토를 수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0년 11월 23일, 이찬석 위원장의 주도 아래로 설립된 이후, 본 단체는 전국 17개 시·도에 지부와 분회를 설치하여 국민들과 함께 독도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독도 지킴이 교육, 독도 홍보 캠페인, 독도 자원봉사 활동 등이 있으며, 지난 20여년 동안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독도 관련 단체로 자리매김하였다. 지난 10월 0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본 단체의 사무실에서 이찬석 위원장을 만나 독도 관련 활동과 향후 비전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문: 독도지킴 국민행동본부의 설립취지는 무엇인가? 답: 독도는 역서적으로 지리적으로 한국땅이다. 이런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품은 국가는 두개이다. 나라의 영토 주인이 둘이 될 수 없다. 영토 주권은 곧 국가이다. 국민 애국심이 총화단결하여 독도의 섬을 유리하고 있는 침략자인 가짜 주인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은 8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도서관협회 주관, 금구도서관 시행, ‘동학대접주 김덕명 장군과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제목으로, 김제시 금구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강연을 가졌다. 강연의 취지는 ‘2023년 길 위의 인문학, 호남평야의 중심-김제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뿌리를 찾다.’이다. 주제는 이윤영 관장의 저서 <동학농민혁명 장편소설 ‘혁명’을 중심으로 그동안 동학관련 저술 책자 속에서의 ‘김덕명 장군과 금구 원평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이다. 강연 1부는 ‘금구·원평 동학대접주 김덕명의 일생’이며, 2부는 ‘이윤영 동학농민혁명 장편소설 <혁명>책속으로’강연을 하였다. 또한 3부는 이윤영 관장 출연 TV 동학기행 영상을 관람하였고, 끝으로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강연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김덕명(金德明.1845~1895)장군의 이름은 준상(埈相) 이요, 자는 덕명(德明)이 고, 호는 용계(龍溪)요, 본관 은 언양(彦陽)이다. 덕명은 학문에도 능했으며, 건 장 한 체격과 언변이 유창했고, 불의와 비리를 참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의정부 경전철의 타고 가다보면 ‘범골역’이라는 역(驛) 명(名)이 나옵니다. 그래서 웬만한 분들은 아마도 이 동네가 왜? ‘범골’일까 하고 의문점도 가져보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그러셨을 겁니다. 그랬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셔요. 흑. 이 ‘범골’이라는 지명유래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요. 그 중 범이 많이 출현하는 지역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說)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범골’의 위치가 옛날엔 ‘녹양평(綠楊坪)’ 안에 자리했기 때문인데요. 조선 시대 전부터 ‘녹양평(綠楊坪)’(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의하면 녹양평의 범위는 지금의 녹양동에서부터 다락원까지 ‘동서 7리, 남북 12리’라고 적혀있음.)은 말을 키우는 목장이었어요. 그래서 말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곤 했고, 조선시대 때에는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세조(世祖)가 착호갑사(捉虎甲士: 호랑이 잡는 별동부대)를 앞세우고 여러 차례 다녀갔으며 마침내 호랑이 등살에 못 이겨 ‘녹양(綠楊)목장(牧場)’을 ‘살곶이 목장(箭串牧場: 살곶이 다리 건너 뚝섬.)’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망월사(望月寺)로 올라가는 두 사람의 여정은 험난했습니다. 배나온 신동명교수(60세)와 그를 끌고 가야 하는 김수원형님(72세). 72세의 나이에도 청년의 몸을 지닌 김수원형님과 60세임에 불구하고 펭수의 하체를 가진 신박사. 그들이 2022년 5월 14일 오후3시에 찾아 나선 오늘의 지명여행은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수원형님이 온조대왕과 관련한 ‘용의 우물(용정(龍井))’이라 주장하는 극한의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는 커다란 샘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용의 우물(용정(龍井))’의 정체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난다면 ‘회룡분지(回龍盆地)’라는 지명은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어 돌아왔기에 사용된 지명이 아니라 온조대왕이 저녁마다 용이 되어 바다로 나갔다 돌아왔기에 생겨난 지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사실 여제(女帝) 소서노와 온조대왕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회룡분지(回龍盆地)’를 중심으로 몇 군데의 지명은 온조국(溫祚國)의 역사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불타는 향학의 여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의구심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와~~~~~~~~~. 와~와~.” 2022년 5월 5일. 오후 4시경 호원동 산 35-2. 도봉산 중턱에는 신박신박 신동명 박사의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백제 초기 연질무문토기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이 돌무더기 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함께 산에 오른 ‘진등친목회(김수원(72세), 강대성(61세), 정일삼(60세))’ 회원들도 신박사의 옥타브 높은 돌고래 발성에 같이 흥분하는 모습이었죠.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 조상님들의 은덕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날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의정부 ’회룡분지(回龍盆地)‘를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 추정했던 이유 한 가지. 그건 의정부에 하남(河南)과 똑같이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이름의 산성(山城)이 다른 지역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니까요. 그리고 이 이론을 좀 더 발전시키면 ‘이성산성(二聖山城)’ 있다면 그 아래 마을은 ‘위례성(慰禮城)’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호원동 산 55-1. 인천 소래를 거쳐, 부천 노고산을 거쳐, 마포나루를 거쳐, 마포구 할미산을 거쳐 은평구를 거쳐, 양주 장흥을 거쳐, 의정부 홍복산을 거쳐, 녹양동 버들개를 거쳐, 양주 어하고개를 거쳐, 포천 소흘읍 비득재를 거쳐, 남양주 별내면 용암리 비루개를 거쳐, 의정부 고산동 비루개를 거쳐 여황제 소서노와 그의 두 아들 비류왕자와 온조왕자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마침내 도착한 곳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여한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왜? 소서노여제와 두 왕자들은 당시에 꽤나 먼 거리였을 이 길을 수많은 사람들까지 거느리고 이동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들의 주목적은 고인돌이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에게~. 겨우 그 이유 때문에 그 먼 길을 찾아다녔다고? 그렇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고인돌이 많은 지역이 어디냐를 찾고자 했던 겁니다. 고인돌이 뭔데 그 당시엔 어마어마한 이동 프로젝트를 감행해야 했던 걸까요? 그것은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의 수가 많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근거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23. 송화강 뱃노래 -김동환 새벽 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보면은 고국이 천 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 리나 갈 길은 만 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丈夫)도 따라 운다. (『삼천리』, 1935.3) <이해와 감상> 식민지 백성들에게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역사적 사실을 작품에 투영시켜 현실 상황에 맞서 싸우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던 김동환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나라 찾기의 시’를 버리고 민요시로 전향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송화강 뱃노래>이다. 김억, 김소월로 대표되는 기존의 민요시가 다분히 여성적 취향의 애틋한 정감을 갖는 데 반해, 김동환의 민요시는 강한 남성적 어투와 활달한 가락을 바탕으로 한 건강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시는 고국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