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피휘(避諱)'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장에 선왕(先王)의 이름자나 중국의 연호자, 성인(聖人)이나 선조(先祖)들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는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획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언어관습.’을 뜻합니다.
즉 '특정 인명이나 이름의 글자 쓰는 것을 꺼려 피하여 표기하는 방법'을 말하는 거죠.
태조 이성계의 예를 들어보면 조선 국왕으로 즉위한 후 이름을 일부러 ‘旦(아침 단)’으로 바꿉니다. 왜냐? 이름을 두 글자로 줄이고 어려운 글자를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이 쉬운 글자를 선택할 수 있고 피휘할 글자가 많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피휘를 씀에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나름 위민정신(爲民情神)!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국휘(國諱), 집안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가휘(家諱), 성인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성인휘(聖人諱), 원수지간인 사람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원휘(怨諱)라고 합니다.
피휘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대자(代字)라고 해서 피할 글자를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다른 글자로 대체해서 쓰는 방법. 결자(缺字)라고 해서 피할 글자를 쓰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 놓는 방법. 결획(缺劃)이라고 해서 피할 글자의 한 획, 특히 마지막 획을 긋지 않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대자(代字)의 대표적인 예(例)가 바로 ‘대구(大邱)’인데요. 원래 지명은 ‘대구(大丘)’였으나 공자의 휘(이름)가 ‘구(丘)’여서 원래 지명인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바꾸는 형태입니다.
그럼 결자(缺字)의 대표적인 예는 무엇일까? <수서>에 보면 왕세충(王世忠)의 이름을 王□忠이라 표기한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글자를 왕충으로 읽죠. 왜? 세(世)를 빼는 걸까? 그건 위대한 왕 중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세(世)’와 겹쳐서 그런 겁니다.
마지막으로 결획(缺劃)의 대표적인 예로는 앞에서 다루어진 태조 이성계의 개명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요. 임금이 이름을 이단(李旦)으로 고치니 사람들은 그 이름의 휘를 피하기 위해 ‘旦(아침 단)’ 자에 획을 하나 빼어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받침으로 사용되는 마지막 획(一)을 빼도 ‘旦(아침 단)’과 ‘日(날 일)’의 형태가 비슷해서 헷갈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죠. 그래서 마지막 획을 그대로 남기고 대신 ‘日(날 일)’이라는 글자 안의 가운데 있는 가로획을 빼서 ‘口(입 구)’ + ‘一(한 일)’, 즉, '므'의 형태로 사용하는 겁니다. 세상에 없는 글자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죠. 이런 형태를 결획(缺劃)이라고 하는 겁니다.
피휘(避諱)라는 행위는 동양의 전유물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동양보다는 아주 희귀하게 사용된 것은 맞습니다만 서양도 간간히 사용은 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가 로마 숫자 4입니다. 4를 나타내는 로마 숫자 표기는 ‘IV’인 거 다 아시죠? 그런데 재밌게도 로마시대에 4를 나타낼 때 사용된 표기는 ‘IV’가 아니고 ‘Ⅰ’를 4개 사용한 ‘IIII’였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 복잡한 행동을 했을까요? 그건 ‘IV’가 신을 뜻하는 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로마는 하느님(주신)이자 하늘과 천둥의 신이면서 신들 중의 왕으로 유피테르(주피터, Jupiter)를 섬겼는데요. 유피테르의 스펠링이 라틴어로 ‘IVPPITER’라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스펠링 앞부분에 ‘IV’가 자리한 거 보이시죠. 이러다 보니까 ‘IV’가 신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느낌이 자꾸 드니까 로마 사람들은 ‘IV’를 로마숫자 4로 쓰기 보다는 ‘Ⅰ’를 4개 겹쳐서 사용한 ‘IIII’ 형태를 선호하게 됐던 겁니다.
영국은 왕의 이름에 스티븐이나 존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왤까요? 스티븐 왕(잉글랜드왕, 왕위계승 전쟁으로 왕좌에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통치는 전혀 하지 못한 왕.)이나 존 왕(영국 정부 행사에서 조차 무능한 왕으로 소개되는 봉토를 받지 못하여 붙은 것으로 '결지왕(缺地王)' 또는 '무영토왕(無領土王)'으로 불림)은 무능의 아이콘이자 멍청이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라는군요.
미국도 이러한 비슷한 예(例)가 있는데요. 미국사람들은 남자아이의 이름에 ‘베네딕트’란 이름을 일부러 피한다네요. 왜냐? 미국의 매국노 중에 ‘베네딕트 아놀드’(미국의 군인. 미국 독립전쟁 와중에 활동한 장군. 독립전쟁 중 배신행위를 저질러 미국인들에게는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 1779년부터 영국군과 내통을 시작했고, 1780년 뉴욕 웨스트 포인트의 사령관이 되자 이를 영국군에게 넘기려 했으나 이 문건을 가지고 있던 영국군 스파이이자 정보장교인 존 안드레 소령이 체포되자 조지 워싱턴의 추적을 가까스로 피해 허드슨 강을 넘어가 영국군 전함으로 도망간 인물)라는 사람이 있었다 보니까 ‘베네딕트’란 이름을 피한다는 것이죠.
여기까지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거예요. 피휘(避諱)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금수저의 이야기지 흙수저의 이야기는 아니잖아. 우리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인데 왜 이렇게 길게 쓰지? 뭐 이런 생각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반 흙수저들은 피휘(避諱)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흙수저들도 사용했습니다. 그 흔적이 바로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언급할 때 “홍길동”이라 하지 않고 “홍 길자 동자”라고 조심하여 부르는 현상입니다.
자! 이제 피휘(避諱)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셨나요? 그러면 왜 신박신박 신동명박사는 피휘(避諱)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에 그리고 지루할 정도로 길게 전개했을까요? 그것은 피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는 이 글의 주제인 ‘의순공주를 그리워하는 땅. 의정부’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순공주의 정(情)이 서려있는 언덕'이라는 말을 한문으로 쓰면 어떤 모습일까?
'의순공주(義順公主)의 정(情)이 서려있는 언덕(阜)'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義情阜(의정부)'라는 모양이 됩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일은 ≪대동지지≫에 '議情阜(의정부)'라는 표기가 등장한다는 사실.
≪대동지지≫라는 책이 어떤 책입니까? 조선 전기부터 국가적인 사업으로 수년에 걸쳐 시행하였던 전국지리지 중 가장 훌륭한 전국지리지라는 소리를 듣는 책 아닙니까! 또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지도학자이자, 측량학자이자, 지리학자라 할 수 있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 추정)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일생의 집념과 성과가 결집된 책이라는 거 아닙니까!
정확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한 김정호가 남긴 이 책에 '議情阜(의정부)'라는 표기가 뚜렷이 등장하는 것은 충분히 객관성이 확보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의정부(議政府)’라는 글자를 일부러 틀리려고 '議情阜(의정부)'라고 표기할리는 없지않습니까? 김정호가.
앗! 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議情阜'라는 표기는 '義情阜(의정부ㅡ의순 공주의 정이 서려있는 언덕)'라는 표기와 많이 닮았습니다 그려~~. 요것 봐라!
이게 어찌된 일일까?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적혀 있는 '議情阜(의정부)'라는 표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완벽주의자 김정호가, 글씨 하나 틀리는 걸 용서하지 않는 김정호가 ≪대동지지≫에 새겨 넣은 '議情阜(의정부)'라는 표기에는 뭔가 전달하고 싶은 다빈치코드가 숨겨 있을 거 같은 느낌적 느낌?
바로 이때 우리는 피휘(避諱)에 대한 기초 지식을 끄집어내야 됩니다.
'議'자가 '의순공주(義順公主)'의 '義'자를 꺼려 피하고자 '議'자를 썼다면?
피할 글자를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다른 글자로 대체해서 쓰는 방법인 대자(代字)를 사용했다면?
'議情阜'는 '의순공주의 정이 서려있는 언덕'이라는 뜻이 담긴 글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여기서 '부(阜)'자는 언덕이라는 뜻뿐만이 아니라, 무덤(묘)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니
'議情阜'는 '의순공주의 정이 서려 있고, 묘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의순공주의 묘가 있는 곳?
이렇게 되면 이 글자는 단순히 그리움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지정하는 의미가 되고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고 있는 글자가 되는 겁니다.
의순공주의 묘가 있는 곳. 의정부-'議情阜'
헐~~~~!
그러네~~~!!!
왜 안 그랬겠습니까?
사실 그 당시 조선은 임금부터 백성들까지 '의순공주'의 도움을 안 받았다고 얘기한다면 잘못된 거 아닐까요?
자신의 청춘을 바쳐, 삶을 바쳐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여인. '의순공주'
당 시대에 의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공주의 희생을 감사히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 정신을 기리려 하지 않았을까요?
지명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을까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지지≫에 이 뜻을 아로새겨 후세에 남기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대동지지≫에 등장하는 '議情阜(의정부)'라는 표기는 많은 사람들이 '의순공주의 정이 서려 있고, 묘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다가 굳어져 지금의 의정부(議政府)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제 주장이 무리한 주장인가요?
'의순공주의 정이 서려 있고, 묘가 있는 곳' - 의정부(議政府)라고 말입니다.
저는 ‘의순공주’에게 가장 미안한 남자 ‘효종대왕’부터 이런 뜻을 담아 불렀을 것에 대하여 천억만 표 같은 ‘한 표’ 찍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의정부에 남아있는 효종대왕 관련 수많은 지명을 뭐라고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밀리에 추진한 북벌(北伐: 무력으로 북쪽을 친다는 뜻,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에 몹쓸 짓을 한 청나라를 정벌한다.) 정책의 베이스캠프 ‘의정부 어립(御立)개’(임금의 뜻을 바로 세우는 언덕, 현 미군 캠프 레드크라우드 자리). 그리고 효종대왕의 군대가 주둔한 어둔리(御屯里). 효종대왕이 목을 축였다는 어수정(御水井). 효종대왕이 군사훈련 후 하루를 묵었다는 어룡(御龍)골 등 등.
의정부에 남아 있는 수많은 효종대왕 관련 지명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고맙고 고마운 마음에 '의순공주의 정이 서려 있고, 묘가 있는 곳 - 의정부(議政府)'를 찾고 또 찾았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또 다른 어떤 해석이 필요하냐 이런 말입니다!
※ 위의 내용은 의정부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의정부 역사를 깊이 연구했던 후배 강혁이 남긴 이야기를 각색하고 연구와 연구를 거듭하여 마침내 제 생각을 덧붙여서 만들었음을 밝힙니다. 젊은 나이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후배 혁이에게 의정부를 사랑하기 위해 집필된 이 글이 전달되어 함께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