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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소서노(召西弩) 여제(女帝)와 온조(溫祚) 대왕(大王)의 사라진 13년의 이야기(2)

여제(女帝) 소서노(召西弩)의 건국(建國)의 발자취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인천과 경기북부(의정부 양주 포천)에는 공통된 지명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인천 옛지명이 매소현(買召縣)이라면 경기북부는 매성현(買省縣)입니다. 인천 남동구에 소래산과 소래포구가 있다면 경기북부에도 소래산(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이 있습니다. 인천 강화도 건평리와 부천 소사구, 서울 마포 대흥동에 노고(老姑)산이 있다면, 재밌게도 경기북부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의정부 녹양동 입석마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도 노고(老姑)산이 있습니다.

이런 지명의 일치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비루고개가 있다면 의정부 고산동과 남양주 별내면에 용암산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비루개가 각 각 자리하고 있죠.

두 지역은 왜? 이렇게 같은 지명들이 많이 나타나는 걸까요? 그리고 공통의 지명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지명들은 모두 여제 소서노와 초기 백제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지명들이라는 겁니다.

우선 앞으로의 글 진행을 위하여 소서노와 관련된 공통지명들에 대한 내용을 간단 정리하여 제시해보겠습니다.

 

<소서노 관련 지명 초간단 정리 7개 항목>

①매성현(買省縣), 매소홀(買召忽), 매소현(買召縣)-소서노가 지배하거나 금전을 치르고 산 땅.

②소래(蘇萊)-소서노가 들어온 곳.

③노고(老姑)산-소서노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

④비리(비류, 비루)고개(星峴(성현-비류의 발음이 별로 변하여 별고개로 기록되기도 함): 소래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고개)-비류대왕이 넘 어간 고개.

⑤잉벌노(仍伐弩): 시흥의 옛지명), 잉화도(仍火島: 여의도의 옛지명)-소서노가 정벌하여 사람을 살게 한 곳.

⓺어하라(於瑕羅: 붉은 옥의 나라, 고구려왕 동명성왕이 소서노에게 내린 직함, 백제(십제)의 왕의 호칭)고개, 어하고개-소서노가 행차한 길.

⓻버들개(십제의 아사달)-소서노가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세워달라고 기도한 곳. 고주몽의 유화(갯버들)부인을 기리는 땅.

(‘소서노 관련 지명 초간단 정리’ 부분은 언어적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시리즈를 집필하는 이유는 의정부를 중심으로 내 고장에 숨 쉬고 있는 지명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작업일 뿐 만 아니라 지역 어르신들과 다양한 전문가들을 통해 조사된 부분을 기초로 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공통된 지명이 나타난다는 것은 공통된 사건이 똑같이 일어난 지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해도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인천으로 들어온 소서노 여황제는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기에 충분한 땅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더 기름진 땅, 더 넓은 땅, 더 안전한 땅을 찾아 끝없이 찾아다녔을 거구요.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기 위해 그들이 선택방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직 정착할 땅을 찾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땅을 빠른 속도로 확인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겁니다.

빠르게 이동하면서 좋은 땅을 찾는 방법으로 가장 적당한 방법은 따로 있었을까요?

산을 타보신 분들이나 군대를 갔다 온 분들은 아시지만 이동할 때 힘들지 않으면서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은 산의 능선을 따라 가는 겁니다.

당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기름진 땅을 찾아 나섰던 소서노 여제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경기북부에 남아있는 지명들을 통해 소서노 여황제가 걸어간 ‘건국(建國)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산(당시는 ᄒᆞᆫ산-거대한 산으로 불림)을 타고 내려오던 소서노의 군대는 양주 노고산의 능선을 타고 의정부 홍복산(당시는 노고산으로 불림)에 도착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지금의 녹양동 버들개(의정부 공설운동장이나 미군부대 레드크라우드 자리)에 내려와 넓은 평지에서 군사들에게 오랜만에 휴식시간을 주었겠죠. 말도 쉬어야 하고 사람도 쉬어야 하니까.

그리고 1박(泊)을 한 후 평지와 평지가 열린 곳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이동을 하여 양주 어하고개를 넘어 포천 소흘읍 이동교리로 넘어 가서 고모리 비득재(당시는 노고산으로 불림)에 당도하여 사방을 둘러보고 기름진 땅이 가장 넓게 펼쳐진 곳을 향해 내려오게 됩니다.

요즘 한창 아파트 짓는 붐이 일어 역사를 땅 속에 파묻어버리는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민락동이 바로 그곳입니다.

포천 고모리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려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용암산 비루개입니다. 저는 그동안 용암산을 사이에 두고 남양주와 의정부 민락동 방향에 각각 똑같은 지명이 있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는데 이번 소서노 여제의 길을 따라 가다보니 그 어려웠던 숙제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계기가 되었네요. 비류가 거쳐 간 고개였던 것이죠.

그런데 잠깐! 의정부 녹양동 버들개에서 포천 고모리로 가려면 하동촌으로 해서 갈립산(의정부 빡빡산) 앞으로 해서 을지병원으로 해서 축석고개로 넘어 가는 게 가장 빠른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독자 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되어 다시 한 번 더 정리해 드립니다.

지금 독자님이 생각하는 길은 당시로 따지면 힘들어서 못 넘어갈 길입니다. 지금이나 도로가 생기고 차들이 다니니까 쉽게 오가고 평지처럼 되어 있는 거지, 그 당시는 험준한 산이었고 높은 고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지와 능선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산을 타시는 분들에게 조언을 들어보시면 정확하게 말해주실 겁니다. 의정부 녹양동 버들개에서 포천 고모리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황제 소서노가 걸어간 길이라는 것을...

이 길에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요?

저는 ‘어하라 소서노의 길’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일 때 어하고개의 ‘어하’는 소서노 어하라가 걸어간 고개라는 분명한 의미로 되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초기 백제인 ‘십제(十濟)의 건국 루트’이자 ‘소서노 여황제의 건국 발자취’를 지명을 따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독자님들에게 느닷없는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래의 그림에 등장하는 의정부에 여제 소서노는 십제를 건국할 땅을 정합니다.

과연 그 곳은 어디일까요? 힌트는 화살표 방향을 따라 추리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