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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까운 친구가 좋은 친구

최만원, (박사)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국제관계학(한국)

지난 9월 23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과 곧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인 일대일로 정상회의는 국가 간 문화 교류에 대한 다리를 만들었으며 세계 경제 성장에 큰 동력을 주고, 국가 간 공동 발전을 위한 귀중한 기회를 제공하며, 세계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한편 중국어는 중국과 세계 각국 간의 의사소통과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가 중국(어) 관련 수업 인기 시들, 최소 정원 못 채워 폐강 위기”, “제2외국어 선택 고교생 수 급감” 등 지금 우리가 중국어 관련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언론 보도 기사의 제목들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 서울의 중심지역인 종로에 자리잡은 어학원의 상당수가 중국어 학원이었다. 이 학원들은 학생들로 넘쳐났고 개별 기업들은 직원을 위해 회사에 중국어 수업을 개설할 정도로 '붐'이 불었고, 그 열기는 20여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어학 전공이 아닌 필자도 중국에서 유학했고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개인교습을 제안받을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워서 마치 대체불가로 여겨졌던 '영어'의 독보적 지위를 넘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마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세등등하던 중국어에 대한 열기와 중국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사그러든 이유를 어디에서 찿을 수 있을까? 중국어에 대한 뜨거웠던 관심의 상승과 하락 요인을 국제관계 및 한중관계의 부침에서 찾아보고 대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 궤도에 진입하게 된 절묘한 시점에 중국에 대한 관심과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공식 외교관계를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인에게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공', 즉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일 뿐이었다.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그러나 한중수교는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중공'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본명을 되찾은 중국의 무서운 경제발전과 외교적 관계개선은 마침 중진국으로의 도약을 시작한 한국의 경제발전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삼성, 현대, 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고 중국(어)을 이해하는 인재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증국어의 인기도 하늘 높을 줄 모르게 솟구쳤다. 21세기 초반의 20여년 동안 한중무역이 한국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1/4를 점하면서 과거 미국이 누리던 지위를 대신했다. 결국 한국에서 중국과 중국어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한중의 대외정책이 대립에서 화해와 혁력으로 전화하는 시점에 발화되고 불타올랐다. 한국 학생의 유학 선택지에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1위 국가로 올라선 것도 이 시기였다.

 

그렇다면 난공불략 영어를 추월할 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던 중국어 학습의 기세가 꺾이게 된 주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그 요인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는 한국의 국내적 요인이다. “한국 대학교의 전공은 영어 전공과 기타 전공으로 나뉜다.”라는 농담이 있다. 영어는 모든 외국어를 대표하는 언어이며 다른 외국어는 제2외국어로 분류된다. 한국에서 '영어 과목'이 포함되지 않은 시험은 중요하지 않은 시험이다. 중국어에 대한 열기가 빠르게 불타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한중수교 이전에 닫혔던 물꼬가 트이고 양국이 특히 경제부분에서 서로 시너지효과를 얻으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성과이자 다른 제2외국어 수요자가 중국어 학습으로 전향한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의 중국어 학습열의 정체 또는 감소는 중국어의 기타 외국어 학습자 수용이 한계에 도달했고 이와 동시에 한중관계가 마찰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요인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라 한미일의 협력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은 상당기간 그 강고한 지위를 유지할 것이며, 그로 인해 대중관계는 삐걱거리고 있다. 한반도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고난을 겪었고, 이 때문에 구성원들의 강대국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다만 미국과 일본은 건국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내부에 일정한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 반감을 감소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중국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불편함이 중국어에 대한 열기와 흥미까지 반감시킨 것은 아닐지 고민해 볼 지점이다.

 

중국은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어떤 국가나 지역보다 가깝고 경제적으로 상호 협력 가능한 분야도 많지만,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전쟁까지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한중수고 이후 20여년의 열기와 협력이 예외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중국 정부 또는 민간 부문에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중국을 심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세력을 장기적으로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역으로 한국 정부에서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럼 어떻게 중국어에 대한 열기를 복원하고 이를 통한 양국민의 우호증진을 끌어낼 수 있을까?

최근 중미 간의 대립이 심화하고 한미동맹의 구조에서 한국정부의 행동반경이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일변도의 보수세력과 한반도의 평화에 좀 더 집중하는 중도보수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대중관계에서도 일관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중 양국이 서로 협력하고 교류할 때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 평화공존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해결책은 정치에 있지 않으며 정부 정책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정부 간 갈등이 심할수록 민간분야의 교류와 협력은 강화되어야 한다. 한자의 아름다움은 여전하고 서로 유사한 문화적 역사적 기억은 양국간의 교류가 다시 활발해 질 수 있는 충분한 필요조건이다. 특히 MZ세대의 자율성은 다른 어떤 세대와도 비교 불가능한 강한 개성과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정치가 막히면 민간과 문화로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야 한다. 서울과 제주가, 베이징(北京)과 구이린(桂林)이 개방되고, BTS와 블랙핑크가, 경극과 상성(相声)이 서로를 찾아가야 한다. 정부는 앞에선 얼굴을 붉히더라도 뒤에서는 이런 사업을 계획하고 도와야 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는 속담은 한중 양국에서 모두 기억하는 격언이다. 두 나라 모두 가까운 이웃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