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은 8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도서관협회 주관, 금구도서관 시행, ‘동학대접주 김덕명 장군과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제목으로, 김제시 금구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강연을 가졌다. 강연의 취지는 ‘2023년 길 위의 인문학, 호남평야의 중심-김제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뿌리를 찾다.’이다. 주제는 이윤영 관장의 저서 <동학농민혁명 장편소설 ‘혁명’을 중심으로 그동안 동학관련 저술 책자 속에서의 ‘김덕명 장군과 금구 원평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이다. 강연 1부는 ‘금구·원평 동학대접주 김덕명의 일생’이며, 2부는 ‘이윤영 동학농민혁명 장편소설 <혁명>책속으로’강연을 하였다. 또한 3부는 이윤영 관장 출연 TV 동학기행 영상을 관람하였고, 끝으로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강연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김덕명(金德明.1845~1895)장군의 이름은 준상(埈相) 이요, 자는 덕명(德明)이 고, 호는 용계(龍溪)요, 본관 은 언양(彦陽)이다. 덕명은 학문에도 능했으며, 건 장 한 체격과 언변이 유창했고, 불의와 비리를 참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외교부가 정부의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이하 인태 전략)'으로 소지역별 맞춤형 지역 협력을 추진하고 9개 중점 추진 과제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협력 사업을 도출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지난 28일 정부의 인태 전략에 대한 국내외 지지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구체적인 전략 이행 추진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에는 외교부와 대통령실,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국방부 등 정부 기관, 주한 외교단, 학계 인사 등을 포함해 120여 명이 참석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나라가 21세기 인도-태평양의 시대를 맞아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포괄적인 외교 전략을 발표하게 됐다'며 '지역 및 글로벌 사안에 대한 능동적 한국 외교의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인태 전략은 보편적 가치의 수호와 증진을 대외 전략의 핵심 요소로 명시한 최초 사례다. 한반도,동북아를 넘어 한국의 외교적 지평을 인태 지역과 그 너머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의정부 경전철의 타고 가다보면 ‘범골역’이라는 역(驛) 명(名)이 나옵니다. 그래서 웬만한 분들은 아마도 이 동네가 왜? ‘범골’일까 하고 의문점도 가져보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그러셨을 겁니다. 그랬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셔요. 흑. 이 ‘범골’이라는 지명유래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요. 그 중 범이 많이 출현하는 지역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說)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범골’의 위치가 옛날엔 ‘녹양평(綠楊坪)’ 안에 자리했기 때문인데요. 조선 시대 전부터 ‘녹양평(綠楊坪)’(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의하면 녹양평의 범위는 지금의 녹양동에서부터 다락원까지 ‘동서 7리, 남북 12리’라고 적혀있음.)은 말을 키우는 목장이었어요. 그래서 말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곤 했고, 조선시대 때에는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세조(世祖)가 착호갑사(捉虎甲士: 호랑이 잡는 별동부대)를 앞세우고 여러 차례 다녀갔으며 마침내 호랑이 등살에 못 이겨 ‘녹양(綠楊)목장(牧場)’을 ‘살곶이 목장(箭串牧場: 살곶이 다리 건너 뚝섬.)’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망월사(望月寺)로 올라가는 두 사람의 여정은 험난했습니다. 배나온 신동명교수(60세)와 그를 끌고 가야 하는 김수원형님(72세). 72세의 나이에도 청년의 몸을 지닌 김수원형님과 60세임에 불구하고 펭수의 하체를 가진 신박사. 그들이 2022년 5월 14일 오후3시에 찾아 나선 오늘의 지명여행은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수원형님이 온조대왕과 관련한 ‘용의 우물(용정(龍井))’이라 주장하는 극한의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는 커다란 샘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용의 우물(용정(龍井))’의 정체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난다면 ‘회룡분지(回龍盆地)’라는 지명은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어 돌아왔기에 사용된 지명이 아니라 온조대왕이 저녁마다 용이 되어 바다로 나갔다 돌아왔기에 생겨난 지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사실 여제(女帝) 소서노와 온조대왕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회룡분지(回龍盆地)’를 중심으로 몇 군데의 지명은 온조국(溫祚國)의 역사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불타는 향학의 여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의구심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와~~~~~~~~~. 와~와~.” 2022년 5월 5일. 오후 4시경 호원동 산 35-2. 도봉산 중턱에는 신박신박 신동명 박사의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백제 초기 연질무문토기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이 돌무더기 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함께 산에 오른 ‘진등친목회(김수원(72세), 강대성(61세), 정일삼(60세))’ 회원들도 신박사의 옥타브 높은 돌고래 발성에 같이 흥분하는 모습이었죠.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 조상님들의 은덕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날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의정부 ’회룡분지(回龍盆地)‘를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 추정했던 이유 한 가지. 그건 의정부에 하남(河南)과 똑같이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이름의 산성(山城)이 다른 지역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니까요. 그리고 이 이론을 좀 더 발전시키면 ‘이성산성(二聖山城)’ 있다면 그 아래 마을은 ‘위례성(慰禮城)’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호원동 산 55-1. 인천 소래를 거쳐, 부천 노고산을 거쳐, 마포나루를 거쳐, 마포구 할미산을 거쳐 은평구를 거쳐, 양주 장흥을 거쳐, 의정부 홍복산을 거쳐, 녹양동 버들개를 거쳐, 양주 어하고개를 거쳐, 포천 소흘읍 비득재를 거쳐, 남양주 별내면 용암리 비루개를 거쳐, 의정부 고산동 비루개를 거쳐 여황제 소서노와 그의 두 아들 비류왕자와 온조왕자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마침내 도착한 곳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여한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왜? 소서노여제와 두 왕자들은 당시에 꽤나 먼 거리였을 이 길을 수많은 사람들까지 거느리고 이동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들의 주목적은 고인돌이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에게~. 겨우 그 이유 때문에 그 먼 길을 찾아다녔다고? 그렇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고인돌이 많은 지역이 어디냐를 찾고자 했던 겁니다. 고인돌이 뭔데 그 당시엔 어마어마한 이동 프로젝트를 감행해야 했던 걸까요? 그것은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의 수가 많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근거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23. 송화강 뱃노래 -김동환 새벽 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보면은 고국이 천 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 리나 갈 길은 만 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丈夫)도 따라 운다. (『삼천리』, 1935.3) <이해와 감상> 식민지 백성들에게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역사적 사실을 작품에 투영시켜 현실 상황에 맞서 싸우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던 김동환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나라 찾기의 시’를 버리고 민요시로 전향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송화강 뱃노래>이다. 김억, 김소월로 대표되는 기존의 민요시가 다분히 여성적 취향의 애틋한 정감을 갖는 데 반해, 김동환의 민요시는 강한 남성적 어투와 활달한 가락을 바탕으로 한 건강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시는 고국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인천과 경기북부(의정부 양주 포천)에는 공통된 지명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인천 옛지명이 매소현(買召縣)이라면 경기북부는 매성현(買省縣)입니다. 인천 남동구에 소래산과 소래포구가 있다면 경기북부에도 소래산(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이 있습니다. 인천 강화도 건평리와 부천 소사구, 서울 마포 대흥동에 노고(老姑)산이 있다면, 재밌게도 경기북부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의정부 녹양동 입석마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도 노고(老姑)산이 있습니다. 이런 지명의 일치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비루고개가 있다면 의정부 고산동과 남양주 별내면에 용암산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비루개가 각 각 자리하고 있죠. 두 지역은 왜? 이렇게 같은 지명들이 많이 나타나는 걸까요? 그리고 공통의 지명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지명들은 모두 여제 소서노와 초기 백제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지명들이라는 겁니다. 우선 앞으로의 글 진행을 위하여 소서노와 관련된 공통지명들에 대한 내용을 간단 정리하여 제시해보겠습니다. <소서노 관련 지명 초간단 정리 7개 항목> ①매성현(買省縣), 매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우리 동이족의 역사에 살아있는 마고(麻姑)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쪼개고 별들을 뿌려 세상을 창제한 신화 속의 마고(麻姑), 그녀와 동일시 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인이 역사 속에 실존(實存) 하였던 것입니다. 그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 흔적을 찾아 연천 학곡리 돌마돌 마을의 전설을 만나러 떠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전설에는 살아 있는 마고(麻姑)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앞뒤가 안 맞는 표현이 하나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귀할멈이 쌓은 돌무덤’인데 ‘마을사람들이 신성시’했다? 참 이상하죠? 앞뒤가 안 맞는 내용입니다. 그려. ‘신성시 했다’면 ‘마귀할멈’이 아니어야 하는 건데? 독자님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시죠! 이 표현 안에는 굉장한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혹시 ‘마귀할멈’이라는 표현이 와전되었다면? ‘좋은할멈’인데 ‘마귀할멈’으로 와전되었다면? 그래야 ‘신성시 했다’라는 말과 앞뒤가 맞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마귀할멈’의 표현을 복원 시켜볼까요. ‘마귀할멈’=‘마고할멈’, 어때요. 많이 일치하죠! 아~하. 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내 딸을 돌려주십시오.” 이 얼마나 간절한 표현입니까? “내 딸을 돌려주십시오.” 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 표현입니까? 이 글은 청나라에 조선 사절단으로 간 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愷胤)이 제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전 날 상소문(上疏文)을 올리기 위해 글을 쓰는 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愷胤)은 아마도 피(血)를 찍어 눈물에 새겨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절규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청황제 순치제(順治帝)에게 상소(上疏)하는 중입니다. “내 딸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만방(萬方)을 어루만져 기르느라 널리 사랑하는 데 마음을 두고 있으니 원래 내외(內外)를 구분함이 없고, 그대 나라는 대대로 번국(藩國)이라 칭하여 순종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지극한 정이 서로 연관되었으므로 또한 마땅히 살펴 돌볼 것이다. 조선의 신하인 금림군 이개윤(李愷胤)의 딸이 과부로 집에 살고 있으면서 부모 형제를 멀리 이별하였으니, 내가 측은하게 여긴 지 오래되었다. 또한 이 여인은 왕에게 이미 종친이 되고 또 어루만져 길렀으니, 왕이 늘 마음에 둠이